美합작사 유상감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자회사인 SK온이 위기 탈출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침체) 여파로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와중에 최근 유상감자를 실시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린다.
배터리 업체 SK온이 최근 유상감자를 실시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SK온 미국법인 전경. (SK온 제공)
블루오벌SK 유상감자하기로
SK온, 2조4500억원 회수
SK온과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 합작사인 블루오벌SK는 최근 34억달러(약 4조9000억원) 규모 유상감자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28억달러 규모 1차 유상감자를 결정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유상감자는 자본금을 감소시키면서 주주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SK온 측은 “해외 투자 자본 효율성 제고를 위한 자본 재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유상감자에 따라 SK온 미국법인인 SK배터리아메리카와 포드는 각각 2조4500억원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앞서 1차 유상감자에서도 두 회사는 각각 2조원씩을 회수했다. 블루오벌SK의 유상감자 규모는 총 9조원으로 1, 2차 감자 이후 블루오벌SK 자본금은 기존 약 16조원에서 7조원가량으로 줄어든다.
SK온이 유상감자에 나선 배경은 뭘까. 미국 에너지부가 최근 블루오벌SK를 대상으로 최대 96억달러 규모 대출 지원을 확정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 대출은 미국 에너지부의 첨단기술차량제조(ATVM) 프로그램에 따른 것으로 금리는 미국 국채금리 수준으로 저렴하다. ATVM은 자동차와 관련 부품 제조 사업에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2007년 미국 에너지독립안보법에 따라 제정됐다. 유상감자로 거둬들인 자본은 SK온의 유동성 확보와 부채 상환, 신규 투자 재원 등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대규모 대출을 받고 유상감자에 나설 정도로 SK온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다. 중국발 배터리 물량 공세와 수요 감소로 역대급 위기에 내몰렸다는 우려다.
SK온은 지난해 4분기에만 최대 20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해 3분기 240억원 영업이익을 올려 2021년 10월 법인 출범 이후 12개 분기 만에 반짝 흑자를 냈지만 금세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3분기 흑자전환 당시에도 일시적인 흑자일 뿐, 수익 구조가 본질적으로 개선된 것은 아니라는 냉정한 분석이 나왔다.
전유진 iM증권 애널리스트는 “SK온의 지난해 3분기 흑자는 2분기 헝가리 공장 초기 가동 관련 고정비 부담이 해소되고, 주요 고객사와의 정산 과정에서 일회성 이익이 일부 반영된 영향”이라며 “4분기에는 다시 적자전환할 우려가 크다”고 내다봤다.
재무 구조도 불안불안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SK온 부채는 23조6351억원으로 이 중 유동부채만 12조원을 넘는다. 이에 비해 현금성 자산은 2조1342억원으로 2023년 3분기(3조4553억원) 대비 급감해 유동성 확보가 절실하다. 반면 공장 가동률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SK온의 국내외 공장 평균 가동률은 46.2%에 불과했다. 배터리 판매가격 하락도 악재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배터리 수출 가격 잠정치는 1t당 3만6086달러로, 3분기(4만95달러) 대비 10%가량 하락했다.
수익성 개선 가능할까
미국 합작공장 가동 실적 변수
사정이 이렇다 보니 SK온은 지난해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흑자전환을 달성할 때까지 모든 임원 연봉을 동결하고 임원 해외 출장 시 이코노미석 탑승을 의무화했다.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하는가 하면, 최대 2년간 학비를 지원하는 ‘자기개발’ 무급휴직도 진행했다.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연봉의 50%와 단기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SK온이 실적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익성 회복을 위해선 올해 완공을 앞둔 미국 내 합작공장 가동 실적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SK온은 올해 포드와의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켄터키1공장(37GWh)과 테네시공장(43GWh), 조지아주의 현대차 합작공장(35GWh) 등 3곳의 상업 가동을 시작한다. 이로써 22GWh 수준인 미국 내 생산능력이 1년 새 5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SK온 배터리가 탑재되는 현대차 아이오닉5·9,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기아 EV6·9 등 5종은 올해 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 7500달러(약 1100만원)의 소비자 보조금을 받는 차종으로 선정됐다. 또 포드의 F-150 라이트닝, E-트랜짓 등도 보조금 대상으로 선정돼 판매량을 늘리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서 현대차와 포드 전기차 판매량이 늘면 현지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공급하는 SK온의 세액공제 혜택도 커지는 덕분이다. 미국은 IRA에 따라 자국에서 배터리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에 셀은 1㎾h당 35달러, 모듈은 1㎾h당 10달러 세금을 공제해준다.
물론 안심할 때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축소, 폐지를 예고해 전기차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소비자 보조금이 사라지면 전기차 구매 수요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온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IRA 보조금 수령을 전제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모든 정부부처에 ‘IRA에 근거한 보조금 등 자금 지출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하면서 악재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중국 업체 질주도 변수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기준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에서 SK온은 5위(4.5%)를 기록했다. 독보적인 선두를 달리는 CATL(36.8%), 2위 BYD(17.1%) 등 중국 업체와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나마 LG에너지솔루션이 11.6% 점유율로 선방했지만 중국 업체 2곳 점유율이 50%를 넘는 만큼 분위기 반전은 쉽지 않다는 염려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SK온은 그룹 리밸런싱 과정을 통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붙여 수익성 개선 효과를 노렸다. 2013년 SK이노베이션의 에너지 트레이딩 조직이 분사해 출범한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원유·석유화학 제품 트레이딩 물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회사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영업망 등을 기반으로 원소재 공급망 확보 등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조치란 분석이다. SK엔텀은 SK이노베이션의 탱크터미널 자회사다.
SK온의 당면 과제인 기업공개(IPO)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SK온은 재무적투자자(FI)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2026년 상장을 약속한 상태다. SK온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도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SK온 상장 시 자사 주주에게 SK이노베이션 주식과 SK온 주식을 교환할 기회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캐즘 여파로 국내 1위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마저 비상경영에 내몰린 상황에서 SK온이 다양한 돌파구를 찾지만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PO를 앞둔 상황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국 업체와 차별화된 신기술 배터리 개발에 주력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 총평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5호 (2025.02.05~2025.02.11일자) 기사입니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