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경제TalkTalk] 조경엽 한국경제硏 선임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멕시코, 캐나다 등 우방국뿐 아니라 중국 같은 경쟁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 수출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반도체·배터리·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성장세는 꺾지 못할 겁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9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전망하고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 주력 수출업종이 단기적으로 미국 정부의 보조금 축소 등으로 위축되겠지만, AI·데이터 센터·로봇·우주 산업 등에서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서 길게 보면 이번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경제연구실장 등을 역임하며 거시경제, 재정 등을 연구하고 있다.
- 트럼프 재집권 시대의 키워드는?
“글로벌 대전환이다. 트럼프 1기 정부 때 시도됐던 대전환이 가속될 것이다.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와 산업 지원 정책에 고삐를 죄면서 탈세계화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래의 기술 패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혁신 경쟁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트럼프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먼저,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 10~20%를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나라 제품에 매기겠다고 했다. 특히 중국의 대미 우회수출 통로로 멕시코와 캐나다를 지목했다. 멕시코는 중국 다음으로 대미 무역 흑자가 많고, 캐나다도 10대 대미 무역 흑자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USMCA(북미자유무역협정)도 재협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 불똥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옮겨 붙을까 걱정이다. 한국도 작년에 514억 달러의 대미 무역 흑자를 냈다.”
- 한국과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대미 무역 흑자가 높은 부분은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이다. 특히 자동차 부문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1기 정부 때에도 한·미FTA 재협상을 했다가 2021년 종료 예정이던 화물자동차 관세를 2040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었다. 트럼프는 자동차 산업이 자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에 재협상에 나선다면 자동차 부문을 들고 나올 것 같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 2기의 무역 규제 조치에도 AI(인공지능) 관련 산업은 큰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기훈 기자
- 중국 견제는?
“더 강화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 산업 위주로 중국을 제재했지만, 트럼프는 예컨대 범용 반도체의 수출까지 통제하는 등 전방위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인들은 생필품을 중국산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중국과 완전한 단절은 힘들다. 하지만 중국 때리기는 더 심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현재의 바이든 정부보다 더 심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 11월 19일 스페이스X의 우주발사체 발사 모습을 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트럼프 1기 정부 때처럼 먼저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첨단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기술 자립을 통해 중국 내수를 뒷받침하고 그 여력을 몰아 수출까지 활성화하는 쌍순환 전략을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자력갱생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전략은 미국이 핵심 기술의 유출을 막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 내 기업 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부동산 거품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중국의 전략이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 위안화 환율을 높여 대응할 가능성은?
“중국이 위안화 약세(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상승) 정책을 쓰면 미·중 간에 환율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중국도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아 이 방법도 동원하겠지만, 미국의 관세 인상 효과를 상쇄할 정도로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대규모 위안화 약세가 진행되면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2기 정부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거리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기념 연설을 하는 모습. /신화 연합뉴스
- 미·중 갈등 격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먼저 대중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 또 한국은 중국의 핵심 광물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원자재 수급 불안정성이 높아진다. 이런 위기 요인의 반대편에는 기회도 있다. 미국이 중국 제품의 미국 상륙을 워낙 강하게 제재하면 한국·일본·유럽연합(EU)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중국 수입품을 대체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 중국 기술이 한국 첨단 기술을 추격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물론 이런 지연 효과가 오래 갈 수는 없다. 중국의 자체 기술 혁신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 한국 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우선, 배터리 등 친환경 에너지 제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판매할 때 지급하던 보조금을 폐지하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미국에 공장을 둔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영업 손실을 볼 수 있다. 미국 시장은 규모가 크지만 생산 단가가 높다. 그래도 한국 기업들이 진출한 이유는 보조금 지원을 받으면 영업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지원 계획을 철회하면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 등 4대 그룹이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대미 투자 규모는 843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에 대한 대가로 9조50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되어 있다. 또 트럼프 정책이 달러 강세, 원화 약세로 이어지면 달러당 1200원 시절에 미국 투자를 계획한 삼성,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1400원대 환율 지속으로 10조원 이상의 환차손을 추가로 입게 된다. 미국 시장에서의 투자를 재조정하거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미국 진출 한국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없을 경우 경영 실적이 악화될 전망이다. 사진은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9월 8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북미 최대 에너지 전시회 'RE+ 2024'에서 설치한 전시 부스. /LG에너지솔루션
- 한국에 투자하면 되지 않나?
“국내 투자 환경이 좋지 않다. 전기 용수 확보, 주민 반발 등으로 공장 짓는데 몇 년씩 걸린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기업들의 탈중국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동남아, 인도, 유럽 국가로 향하는 기업은 많은 반면, 한국으로 오는 기업은 없다. 왜 그런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 트럼프 정책 실행 이후 원·달러 환율은 어떻게 될까?
“독일, 일본, 중국의 경제 상황이 미국의 달러 강세를 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내년에도 강달러가 이어질 것이다. 그 여파로 원·달러 환율은 1달러당 1400원대 초반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 물가 상승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트럼프의 공약이 그대로 시행될까?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동맹국들과 등을 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럼프가 관세를 올리면 중국 뿐 아니라 유럽연합과 한국 등 우방국들도 관세를 올려 대응할 수 있다. 동맹국들이 보복 관세를 시행하면 미국에도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 결과 미국 소비가 둔화된다. 미국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수입 원자재의 생산 단가가 높아져 미국 기업들의 해외 수출이 둔화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동맹국들의 협조 없이는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에도 차질이 발생한다. 정책 의도와 달리 부작용들이 나타나면 정책을 지속하기 어렵다. 설령 트럼프 2기 정부 동안 그러한 정책 흐름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정책이 다시 바뀔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대중국 관세가 대폭 높아지고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10% 수준의 보편 관세를 동등하게 적용 받는다면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대체 효과가 발생해 한국 수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국이 관세 정책을 대미 무역 흑자가 나는 국가에만 적용한다면 한국도 무역 흑자 국가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미·중 패권 전쟁이 심화되면 중국이 핵심 광물 수출을 무기로 삼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아프리카나 남미 등으로 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해 놨는데 한국은 글로벌 광물 자원 확보 시스템이 아직 미흡하다. 서둘러야 한다. 더불어 공급 과잉에 직면한 전통 제조업의 구조개편, 선도형 혁신 산업으로의 전환, 혁신을 이끌 사업 주체 양성 등 산업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트럼프 2기 정부의 무역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AI(인공지능) 대세는 전세계를 주도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사진은 2023년 5월 도쿄에서 열린 제 7회 인공지능 박람회. /AFP 연합뉴스
―투자자들이 주목할만한 업종이 있다면?
“트럼프 시대에 신재생 에너지 관련 기업은 어려움을 겪고 석유·정유 업체 등 화석 에너지 기업들은 혜택을 볼 것이다. 전기차는 주춤하겠지만 여전히 대세를 점할 것이다. AI산업에 대한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로 AI 관련 산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업의 경우 LNG(액화천연가스)·LPG(액화석유가스) 운반선 등이 각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조선업체도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 재건 수요가 있어서 건설업체의 기회가 늘어나겠지만 트럼프의 중동 강경책으로 신규 발주 감소와 프로젝트 지연 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 러·우 종전과 중동 지역의 미국 방산업체 수출 규제가 풀리면 한국 방산업체의 해외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는 글로벌 자주국방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수 있다.”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kh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