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가 중국에 7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반도체 수출 중단을 통보한 가운데, 중국 내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한편 "예상했던 수순"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어차피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반도체 영역의 제재는 강해질 것이며, 자생력 확보 외엔 답이 없다는 거다.
11일 중국 한 주요 AI(인공지능)용 반도체 설계기업 임원은 현지 언론에 "TSMC로부터 파운드리 제조를 중단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어떤 제품에 대해 어떻게 제한하는지에 대해 세부적인 사항은 명시돼 있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일주일 내에 세부적인 내용이 통보되곤 한다"고 말했다.
정작 대만 기업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중국 기업들은 모르는 세부 규제내용을 알고 있는건 서방언론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앞서 8일(현지시간) "대만 TSMC가 11일부터 7nm 이하 반도체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재집권에 앞서 협조적 시그널을 보내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로이터통신도 관련 내용을 비중있게 보도하며 "미국 상무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전했다.
TSMC의 독자적 '쇼잉'이든 배후에 미국의 요청이 있었든 이번 수출금지 조치는 TSMC에도 의미가 큰 결단이다. TSMC 매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6% 정도다. TSMC 전체 매출에서 3분기 기준 7nm제품 비중은 17%로, 5nm(32%), 3nm(20%)에 비해 적었지만 TSMC로서는 상당한 중국 수출 물량을 포기해야 한다.
반도체는 숫자가 적어질수록 만들기 어려운 첨단 기술이 적용된다. 7nm급에 대한 규제가 시작됐다는건 사실상 중국에 대한 반도체 규제를 현 범용 이상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22년 수출통제 조치를 통해 14nm 반도체에 대한 장비와 기술 규제를 개시한 상태다. 이번 규제를 통해 7nm급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도 신호탄이 올랐다.
시점은 이르다고밖에 할 수 없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기도 전이다. 중국 반도체업계엔 당혹감이 읽히지만 실상 "언제든 발생했을 일"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TSMC의 조치에는 AI칩만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국 도입될 미국의 규정에 어떤 유형의 칩들이 포함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규제가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는 거다.
다른 관계자는 "결국 어떤 규제를 미국이 시행하더라도 중국 반도체 업계는 실제로 미국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으며 여전히 자립하고 집중해야 한다. 고착된 링크를 극복하고 전체 산업 체인의 개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규제는 결국 전방위적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고, 중국의 유일한 대응방안은 고성능 반도체의 자체 생산 뿐이다.
트럼프 집권 1기(2017년 1월~2021년 1월)는 중국 반도체 산업과의 전쟁이었다. 2018년 4월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제재를 시작으로 같은 해 7월엔 중국산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2019년 5월엔 화웨이 제재를 시작했고, 2020년 5월부터는 아예 미국의 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2020년 8월엔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SMIC를 직접 제재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2기에도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이 임기를 관통할 전망이다. 달러, 원유와 함께 반도체는 경제 패권의 3대 키워드 중 하나다. 반도체 자립 여부는 중국이 결국 미국을 상대로 하는 경제전쟁 속에서 살아남느냐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새로운 규제가 시작되면서 중국의 반도체 우회확보 전략도 보다 절박하고 광범위해질 전망이다. 미국 대선을 앞둔 지난달 말 작년 중국 화웨이가 내놓은 AI칩셋에서 대만 TSMC의 7nm 반도체가 나왔다. 화웨이에 대한 TSMC의 거래 중단 이후 생산된 제품이다. 화웨이가 제재 대상이 아닌 중국 기업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몰래 주문을 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규제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중국의 반도체 산업 자생력도 빠르게 확보된다는 점은 미국의 고민거리다. 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뚫고 올해 7nm칩을 장착한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미국을 아연하게 한게 대표적이다. 이제는 중국의 패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기차나 태양광도 그렇다. 강력한 규제를 뚫다보니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세계적 자생력을 갖췄다.
중국이 끝내 고성능 반도체 자급망을 갖추는데 성공할지, 또 그러기 전에 미국이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을지를 놓고 반도체 세계대전은 재차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고성능 반도체 생산라인 연구개발 및 확장을 가속화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