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4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자신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열린 미국 우선 정책 연구소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엘지(LG)에너지솔루션 -12.09%, 포스코(POSCO)홀딩스 -10.48%, 에코프로머티 -15.06%.
15일 국내 이차전지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예고했던 전기차 보조금 축소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이자, 실적과 미래 성장성에 대한 우려로 번진 것이다. 트럼프 2기가 시작하면 그동안 조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맞춰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한국 주력 산업에 미칠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의 정권 인수팀이 노리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 때 만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전기차 보조금 성격의 세액공제다. 미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배터리와 핵심 광물 등에 대한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살 경우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1천만원)의 혜택을 제공한다. 탄소를 배출하는 내연기관차를 줄여 기후위기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전기차 시장을 중국에 내주지 않기 위해 자국 내 전기차·배터리 업체 경쟁력을 키우려는 의도를 담았다.
그러나 나라별로 탄소를 감축해야 하는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공언한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기간 이러한 전기차 보조금을 끝내겠다고 공언해왔고, 14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당선자 인수팀이 이 보조금을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또 트럼프 당선자와 가까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보조금 폐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전했다. 머스크는 지난 7월 테슬라 실적발표 뒤 콘퍼런스콜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면 테슬라 판매가 약간 피해 볼 수 있지만, 경쟁사에는 치명적일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테슬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거둬들이면 한국 업체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 미국 내 전기차 수요 감소로 인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장기화할 수 있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세운 엘지에너지솔루션·삼성에스디아이(SDI)·에스케이(SK)온 등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에 당장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차그룹도 미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서둘러 지어 최근 가동에 들어갔는데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국내 업체들은 트럼프 당선자의 인플레이션감축법 흔들기가 어디까지 갈지 주시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판매 때 기업에 1㎾h당 최대 45달러의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제공한다. 이 세액공제 규모가 상당해 이차전지 업체들은 캐즘에 따른 실적 둔화를 간신히 만회하는 상황이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5일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이 첨단제조세액공제 보조금 수령으로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적자 전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며 “이차전지 셀 및 소재 업체의 수익성 저하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인플레이션감축법이 전면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법에 담긴 에너지 정책 지원금이 이미 공화당이 집권한 주를 포함해 각지에 배분됐고,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감축법 전면 폐기는 정치, 경제적으로 실익이 크지 않아 가능성은 낮지만 전기차·배터리 수요에 영향을 주는 규제 완화 및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국내 업계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 이차전지 업체 관계자는 “예의주시하며 대응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자료를 내어 “인플레이션감축법 보조금 관련 폐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미국 쪽과도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