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27일 미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비트코인을 금처럼 미 중앙은행의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미국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서학 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트럼프 당선으로 주가가 오르는 ‘트럼프 랠리(강세)’의 대표 종목이 서학 개미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전기차 업체 테슬라이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지난 8일 321.22달러로 마감해 대선 직전인 4일보다 32%가량 올랐다.
그래픽=양인성
11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 개미의 테슬라 보유액은 대선 직전인 지난 4일 기준 137억달러로, 1000억달러가 넘는 미국 주식 가운데 단연 1위다. 국내 투자자들이 대선 이후 테슬라를 팔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면 4일 만에 약 44억달러(약 6조원)를 번 것이다.
◇테슬라, 트럼프 당선 후 32%대 상승
테슬라는 미 대선 이후 서학 개미들에겐 최고 효자 종목이다. 서학 개미 보유 2위인 엔비디아는 지난 4~8일 8.5% 올랐다. 지난 4일 서학 개미의 엔비디아 보유액(126억달러)을 감안하면 4거래일 동안 평가 금액이 11억달러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서학 개미 보유 종목 3·4위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각각 2.2%, 3.5% 올랐다. 이 종목들을 보유한 서학 개미들도 각각 1억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다른 주식들도 오르긴 했지만, 서학 개미들의 주요 수익원은 테슬라였던 것이다. 테슬라의 급등은 트럼프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효과다. 존 머피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는 “머스크와 트럼프 간의 관계가 잠재적으로는 회사의 성장과 수익성 증가 기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면서 “특히 자율 주행 기술에 대해 트럼프 2기 정부가 연방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테슬라에 대한 매수 투자 의견을 유지하고, 12개월 목표가를 기존 265달러에서 350달러로 높였다.
◇현대차 이익보다 적은데 시총은 32배
서학 개미들이 국내 주식에 투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자동차 부문에서 테슬라가 30% 넘게 오를 동안, 국내 자동차 대장주 현대차는 1.86% 하락했다. 현대차의 경영 능력이 테슬라에 밀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분기 테슬라 매출은 251억8200만달러(약 35조원), 순이익은 21억6700만달러(약 3조284억원)였다. 반면 현대차 매출은 43조원, 순이익은 3조2000억원으로, 테슬라의 거의 1.2배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테슬라가 1조100억달러(약 1400조원), 현대차가 44조원으로 32배 차이 난다. 한 증권사 임원은 “아무리 테슬라 미래 가치가 높다고 해도, 매출과 순이익이 적은데 시총이 32배 차이 나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국내 다른 업종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가 대선 이후 8.51% 상승할 때, SK하이닉스는 0.31% 하락했다. 애플이 2.23% 상승했지만, 삼성전자는 4.51% 하락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강경 기조가 미국 내 AI 산업에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한국 업체들엔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개미들이 많이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성적도 극명하게 갈렸다. 서학 개미 보유 종목 5위인 ‘ProShares UltraPro QQQ(TQQQ)’는 수익률이 나스닥100 지수 하루 등락률의 3배로 설계된 ETF다. 트럼프 당선 이후 나스닥 지수가 오르면서 이 상품 가격은 17.8% 상승했다. TQQQ 투자자들은 약 5억4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가 3%가량 하락하면서 코스닥150 지수의 일별 수익률을 2배씩 추종하는 ‘KODEX 코스닥 150 레버리지 ETF’는 6.25% 떨어졌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트럼프 정부 2기 확정 이후 국내 증시는 맥을 못 추는데 미국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고 있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운 기자 liet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