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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쁜 사업 조정…방어적인 ‘스몰딜’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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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없다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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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감춘 재계 ‘빅딜’



재계에서 ‘스몰딜(Small Deal·소규모 인수합병)’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조 단위 ‘빅딜(Big Deal)’은 사실상 자취를 감춘 가운데 사업 재편 등을 목적으로 한 스몰딜이 확산 추세다. 이는 반도체를 비롯 우리 주력 산업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했고 대내외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2025년에도 공세적 빅딜보단 방어적 성격이 강한 스몰딜이 재계 주요 사업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효성·코오롱·한화 스몰딜 활발


삼성, 기술 강소기업 관심


최근 재계에서 빅딜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12월 13일 기준 2024년 인수합병(M&A) 투자 규모는 총 8조5808억원으로 전년(14조1297억원) 대비 39.3% 줄었다. 2024년 1조원 이상 대형 M&A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건이 사실상 유일했다. 이는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361곳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M&A 현황을 조사한 결과다. 2024년 완료된 M&A 건수도 총 50건으로 전년 87건에 비해 42.5% 줄었다.


빅딜이 급감한 가운데 스몰딜이 주된 인수합병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몰딜은 주로 기업의 사업부 간 인수합병이나 사업 조정을 목적으로 한 소규모 거래를 뜻한다. 국내 재계에서는 인수합병 규모에 주목해 피인수기업 가치가 인수기업보다 월등히 적을 때도 스몰딜로 부른다.


눈에 띄는 흐름은 유동성 확보와 사업 구조 재편을 목적으로 한 스몰딜이다. 주력 사업 현금흐름이 위축돼 일부 계열사에서 유동성 고갈 우려가 불거지거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위해 스몰딜에 나선 경우가 많다. 효성그룹, 코오롱그룹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최근 효성그룹은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 매각이 본계약을 앞두고 무산되자 이를 효성티앤씨에 매각하기로 했다. 효성화학 특수가스 부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물질 세척에 쓰는 삼불화질소(NF3)를 생산한다. 연산 8000t 규모 생산 설비를 갖췄다. 생산량 기준 SK스페셜티, 중국 페릭에 이어 글로벌 3위다. 양 사를 합치면 세계 2위 NF3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만큼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효성그룹은 주력 사업 부진으로 유동성 확보를 위한 비자발적 스몰딜 성격이 짙단 평가다. 효성화학은 석유화학 업황 부진 직격탄을 맞아 알짜로 평가받는 특수가스사업부 매각을 한시라도 빨리 이뤄야 했다. 효성화학은 조 단위로 투자한 베트남 공장 정상화 지연, 글로벌 석유화학 시황 악화로 최악 유동성 위기에 시달린다. 2024년 3분기까지 12분기 연속 적자다. 누적 적자로 부채비율은 2024년 3분기 말 기준 9779%에 달한다. 제조업체 부채비율 마지노선 200%를 훨씬 웃돈다.


코오롱그룹은 이규호 부회장 주도로 부진 사업부 정리와 신사업 조직 정렬 등 사업 구조 개편에 주력하면서 숨 가쁜 스몰딜 레이스를 달렸다. 주력 계열사 중에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변화가 눈에 띈다. 우선 중국산 공세로 가격 경쟁력을 훼손한 필름 사업을 떼어낸다. 코오롱인더스트리 PET필름사업부를 분할한 뒤 SK마이크로웍스와 합작법인에 현물출자해 지분 18%를 확보한다. 국내 필름업계 2, 3위 기업 간 합병으로 손익 구조 개선이 기대된다.


우주 사업 등 신사업 조직 정렬을 위한 스몰딜도 활발했다. 코오롱은 항공·방산 계열사 코오롱데크컴퍼지트, 코오롱글로텍의 경량화 부품·방탄소재·수소탱크 사업, 코오롱ENP의 차량용 배터리 경량화 소재 등 그룹 내 분산돼 있던 복합소재 사업을 한데 모아 2024년 7월 ‘코오롱스페이스웍스’를 출범시켰다.


한화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스몰딜이 활발하단 평가다. 한화그룹은 유사 사업군 통합과 자산 양수도 등으로 사업 간 경계를 확실히 긋고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독립 경영에 나설 토대를 다지고 있단 분석이다. 크게, 한화그룹 내 지주사 ㈜한화 아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등 2개 중간지주사가 놓인 형태다. 승계 구도상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방산·우주항공)를,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로봇·산업장비)와 한화갤러리아(유통)를 맡는 구도다. 차남 김동원 부사장은 사실상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금융 계열사를 총괄한다.


이를 위해 한화그룹은 유사 사업군 통합과 자산 양수도 등 스몰딜을 통한 사업 구조 재편을 숨 가쁘게 진행했다. 3개 회사로 분산돼 있던 방산 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통합한 데 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인적분할해 중간지주사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를 신설한 것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주력 사업 경쟁력을 보완하거나 신사업 기회 모색 차원에서 작지만 기술력이 돋보이는 전문기업을 사들이는 경우도 있다.


삼성전자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빅딜’을 주저하고 있단 평가다. 다만, 2020년대 이후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을 중심으로 스몰딜은 꾸준히 벌여왔다. 스몰딜이 두드러졌던 곳은 삼성전자 계열사 하만이다. 2021년 사바리(자동차 사물통신), 2022년 아포테스라(증강현실)와 카레시스(모빌리티)에 투자했다. 2023년에는 플럭스(SW), 룬(오디오 플랫폼) 등을 인수했다. 2024년에도 스몰딜이 이어졌다.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메디슨은 2024년 5월 프랑스 인공지능(AI) 개발 스타트업 ‘소니오(Sonio)’ 인수 계약을 체결한 뒤 최근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는 2024년 7월 영국 스타트업 ‘옥스퍼드시멘틱테크놀로지스(OST)’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국내 정치 지형 불확실성 확대


2025년도 스몰딜 활발할 듯


재계와 산업계에서는 당분간 빅딜보단 스몰딜이 인수합병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무엇보다 빅딜을 벌일 지렛대가 될 우리 주력 산업 대부분이 중국 기업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다. 위축된 본업 현금흐름으로는 조 단위 빅딜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철강·석유화학·배터리 등은 중국의 무차별적 밀어내기 공세로 신음하는 가운데, 반도체 업종에선 ‘레드테크’ 역습이 매섭다. 중국 공세와 미국(트럼프)이라는 상수 외 계엄·탄핵 정국 변수까지 더해져 2025년 우리 기업은 유례없는 복합위기를 마주할 처지다.


A대기업 지주사 관계자는 “주력 산업 현금흐름이 급감한 상황에서 대규모 자본 조달이 수반되는 빅딜은 이사회 통과도 녹록지 않다”고 털어놨다. B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조 단위 빅딜은 인수대금 절반 이상을 프로젝트펀드나 인수금융 등으로 외부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고금리가 지속되고 있고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높다 보니 빅딜이 주목받기는 힘든 환경”이라고 말했다.


2025년 국내 정치 지형 불확실성이 대폭 확대된 점도 빅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탄핵 정국 아래 민주당 집권 땐 주주 충실 의무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선 이 법안이 사실상 현재 그룹 체제 해체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법안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주 충실 의무는 주주 간 이해 충돌이 있을 경우 공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취지의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룹 차원에서 부실 계열사 신용 보강을 해주거나 대여금을 내주는 식의 의사 결정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부실 계열사를 살리는 것은 대주주에게는 이익이지만, 개별 상장사 주주 입장에선 불필요한 기업가치 훼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C대기업 대관부서장은 “집단 경영 체제에 익숙한 우리 재계 의사 결정 방식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빅딜보단 불확실성 헤지를 위한 유동성 확보, 비주력 자산 매각 등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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