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보다 낮은 6조대 영업익
4분기 SK하이닉스에 추월 전망
HBM 성공적 공급 外 돌파구 없어
엔비디아 "삼성, 새로운 설계해야"
삼성전자 반도체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벽에 막혀 작년 4분기에도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장 기대치에 1조원가량 부족한 6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용 칩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작년 5세대 HBM 공급을 본격화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증권가에서는 아직 작년 4분기 성적표를 내놓지 않은 반도체 경쟁사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8조원대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30%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올해 HBM 등 AI사업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지 않는 한 뚜렷한 실적 반등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6조5000억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29.1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8일 공시했다. 전년 동기보다는 130.5% 늘었으나, 이는 당시 반도체 시장 전반의 불황에 따른 반사효과로 풀이된다.
이는 증권가의 추정치에 크게 미치지 못한 숫자다. 증권가에서는 당초 작년 4분기 영업이익으로 10조원 안팎까지 예상했다가 최근 전망치를 7조원대까지 낮춰 잡았는데, 그보다도 1조원가량 더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다.
실적 부진은 스마트폰, PC 등 IT 제품의 비수기 영향에 범용 메모리의 수익성 악화까지 더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가격은 8월 말 2.05달러에서 3개월 뒤 34%나 급락한 1.35달러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푸젠진화(JHICC) 등 중국 메모리 업체들이 D램을 시중 가격의 절반 수준에 쏟아낸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에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경우 작년 말 기준 전체 D램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을 40%까지 높이겠다고 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발 빠르게 고부가 중심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HBM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에 대한 물량을 늘리지 못하면서 여전히 범용 시장에 붙들려 있다.
이와 관련,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루 호텔에서 가진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HBM 3E 12딘 제품에 대해 "삼성은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며, 삼성전자가 아직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음을 공개했다.
그러나 황 CEO는 다만 "원래 엔비디아가 사용한 첫 HBM 메모리는 삼성이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회복할 것(recover)"이라고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반도체 공세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HBM 경쟁력 확보 없이 삼성전자의 실적 반등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엔비디아에 HBM 제품을 성공적으로 공급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돌파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삼성전자가 강점을 가지고 있던 범용 메모리 D램·낸드플래시에서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부회장)는 같은 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실적에 대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며 "올해는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연합뉴스 제공>
박순원 기자(ssun@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