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암호화폐 대통령 되겠다”

행정부 곳곳에 옹호론자 배치시켜

이해충돌에 금융안정성 등 논란 여전

한때 “암호화폐는 사기”라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암호화폐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을 ‘전 세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암호화폐가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트럼프 당선 이후 50% 넘게 올라 10만 달러를 돌파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는 내년에는 15만 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친암호화폐 인사들 곳곳에 포진

트럼프의 차남인 에릭 트럼프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당신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친암호화폐(pro-crypto)적인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릭은 암호화폐가 “자산이 없는 수백만 개인의 재정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고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은 한물갔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내내 암호화폐 관련 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자신이 들어갈 차기 백악관에 암호화폐 정책을 추진하는 ‘인공지능·암호화폐 차르’를 신설하고, 페이팔 임원 출신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친구인 데이비드 색스를 임명했다. 트럼프는 색스의 차르 지명을 밝히며 “그는 암호화폐 업계가 요구해온 명확성을 확보하고 미국에서 번창할 수 있도록 법적 프레임워크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암호화폐 성향의 폴 앳킨스를 금융 규제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지명한 것도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급격한 방향 전환을 시사한다. 현 SEC 위원장인 개리 겐슬러는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규제를 추진해 왔다.

트럼프의 거의 모든 일정에 동행하며 최측근으로 자리 잡은 머스크는 암호화폐 중 하나인 도지코인 지지자로 유명하다. 재무장관에 지명된 헤지펀드 키스퀘어그룹 창업자 스콧 베센트도 암호화폐 옹호론자다.

상무장관으로 지명된 하워드 러트닉 역시 암호화폐 전도사로, 암호화폐에 부정적이었던 트럼프의 마음을 돌려놓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CNN은 “투자회사 캔터 피츠제럴드의 CEO인 러트닉은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최대 암호화폐 자산 중 하나인 테더의 치어리더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러트닉이 대주주로 있는 캔터는 시가총액 3위 암호화폐인 테더의 대주주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친암호화폐로 나아갈 것이란 신호는 분명하다. 친암호화폐 인사들은 행정부뿐만 아니라 의회에도 포진했다. CNBC방송은 이번 대선과 함께 실시된 상하원 선거에서 친암호화폐 의원 약 300명이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미국에서 가장 친암호화폐적인 의회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암호화폐 업계는 이번 대선에서 총 2억4500만 달러(3525억원)를 모금해 트럼프를 비롯한 친암호화폐 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친암호화폐 노선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가 대선 기간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았고, 그와 그의 가족이 암호화폐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몇 주 전 암호화폐를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인 ‘월드리버티파이낸셜’ 설립을 발표했다. 그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트루스소셜은 암호화폐 결제서비스 ‘트루스파이’를 새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가족은 이외에도 여러 개의 암호화폐 관련 벤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트럼프의 친암호화폐 정책이 이해상충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금’ 평가도… 논란은 여전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세계 금융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에서 암호화폐가 본격적으로 수용된다면 암호화폐는 화폐로서, 금융자산으로서 시민권을 얻게 된다. 획기적인 도약의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불가사의한 상승과 충격적인 하락’으로 요약할 수 있는 암호화폐의 가치와 안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암호화폐 기업이 사기꾼으로 드러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5일 월가의 거물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조명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비트코인에 대해 “디지털 금”이라며 기존의 부정적인 입장을 바꿨다. 그는 과거엔 비트코인을 “돈세탁 지수”로 불렀지만 최근엔 전통적 자산과 무관한 이익을 창출하고 통화가치 하락이나 정치적 불안정을 헤지(위험 분산)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 역시 2017년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을 “투기적 거품”으로 봤지만, 이후 긍정적 입장으로 선회했고 2021년에는 “대체 금과 같은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헤지펀드 시타델의 CEO 켄 그리핀도 과거 비트코인 비판은 실수였다며 지지로 입장을 바꿨다.

반면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여전히 비트코인에 대해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과거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암호화폐를 “사기”로 부르면서 정부가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 역시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힌다. 버핏 회장은 비트코인이 25달러라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