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가상화폐정책 영향력에 주목해야
4차 반감기 이후 펼쳐진 가상자산 랠리에서 비트코인 다음으로 주목받는 것이 ISO 20022와 관련된 알트코인들의 움직임이다.
지난 반감기처럼 전체 시장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있지 않지만, ISO 20022와 관련된 알트코인들은 다른 양상이다. 한 달 여 만에 저점 대비 5배 넘게 오른 것들이 수두룩하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ISO 20022 관련 코인들은 리플, 에이다, 알고랜드, 스텔라루멘, 헤데라, 아이오타, 퀀트 등이다.
대부분이 블록체인 초기부터 프로젝트를 운영해오던 가상자산들이다. 일명 ‘고인물’ 코인들인데, 이들이 4차 반감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국제표준화기구(ISO) 메타로 엮이면서다.
ISO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글로벌 표준을 정하는 기구로, ISO 20022는 금융 거래 시 송금 기록 등 메시지 작성의 표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 및 기업 등 시장 참여자들, 최종 사용자들 간의 통신상호운용성에 관한 표준(공통언어와 구조)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선언적 의미로 그치지 않고 현재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 ISO 20022가 적용되는 등 쓰임새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제 시스템인 페드와이어(FedWire)도 내년 3월 ISO 20022를 구현할 예정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달러와 스위프트 위주인 현 금융체제가 ISO 20022로 대체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고, 일부 가상자산이 시스템에 발을 담그면서 코인 업계는 드디어 블록체인 시스템이 결실을 보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팽배해졌다.
이에 시장에서는 ISO 20022과 관련됐다는 코인 리스트가 돌았고, 관련 메타가 만들어져 시장을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의 탄생 이유 중에는 탈중앙화된 환경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송금이란 측면이 있기 때문에 ISO 20022가 지향하는 바와 일부 연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ISO 20022와 관련됐다고 알려진 코인들이 아직은 ‘카더라’식의 연관성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될 대목이다. ISO 20022 메타 관련 코인들의 실체도 불분명하다.
실제 ISO 20022는 홈페이지를 통해 ‘ISO 20022를 준수하는 암호화폐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암호화폐는 본질적으로 ISO 20022를 준수하지 않는다. 인터넷 상에는 ISO 20022를 준수하는 암호화폐를 언급하는 정보들이 있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고 이러한 진술은 정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는 ISO 20022에 의해 관리되지 않으며 등록되지도 않는다”라고도 했다.
또 ‘블록체인 회사가 ISO 20022을 준수할 수 있냐’라는 질문에서 “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 및 결제 처리업체가 기존 금융 인프라와의 상호 운용성을 위해 ISO 20022 규정을 구현할 수는 있지만 블록체인 자체가 본질적으로 ISO 20022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회사가 회원인 것과 이들이 발행하는 코인이 ISO 20022를 준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때문에 현재 기준으로 ISO 20022와 시장에서 가격이 치솟고 있는 암호화폐들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갖고 있다고 볼 근거는 희박한 측면이 강하다. ISO 20022 관련 가상자산으로 거론되는 곳들도 공식적으로 ‘ISO 20022 준수’와 관련된 입장을 밝힌 바는 없다.
다만 일부 가상자산의 경우 ISO 20022의 회원으로 가입돼 있어 향후 연관성이 발생할 부분이 있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현재 ISO 20022 메타의 대표 주자인 XRP의 모회사인 리플(RIpple)이 API SEG 멤버로, XRP가 돌아가는 리플넷이 등록관리그룹 멤버로 가입돼 있다는 것이 공식 홈페이지에 나타나 있다.
향후 기술적 발전에 따른 연계성도 기대해 볼 수 있어 보인다. ISO 20022는 ‘메시지에 암호화폐를 표시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암호화폐는 ISO 20022 메시지에서 데이터 콘텐츠로 전송될 수 있지만 유효성이 검사되지는 않는다. 현재 메시지에는 고정 통화(EUR, USD 등)가 사용되며 ISO 4217에 따라 유효성이 검사된다”라고 한 뒤 “암호화폐 유효성 검사는 향후 버전의 ISO 20022 메시지에서 구현될 예정”이라고 답했다. ISO 20022에서 암호화폐가 유효하게 쓰인다면, ISO 20022와 블록체인 시스템은 어떻게든 연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디지털 토큰 식별자(DTI)를 관리하는 ISO 표준은 ISO 24165다. 이 표준은 코인의 이동에 제약을 가하는 트래블 룰과 관련된 것이다. 국제자금세탁방지구의 권고안에 따라 국내외 거래소가 의무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발 정책 훈풍은 ‘팩트’
이처럼 4차 반감기 ‘불장’이 근거가 약한 소문에 휘둘리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가장자산 시장이 루머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 10만 달러가 현실화되며 제도권 자산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는 가운데, 각국이 정책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며 실체가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펼쳐질 친가상자산 정책은 세계 암호화폐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친가상정책은 루머가 아니라 팩트이고,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이 산업을 주도한다는 것은 블록체인 분야가 뜬구름을 잡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ISO 20022보다 중요한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상자산 관련 움직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과정에서 천명한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트럼프 차기 행정부 ‘AI·가상화폐 차르’에 지명된 데이비드 색스.<사진 연합뉴스>
먼저 친암호화폐 인사인 데이비드 색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가상자산 차르에 임명했다. 백악관 내 가상자산 관련 직책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트럼프 당선인의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색스는 인공지능(AI) 분야와 관련된 정책도 총괄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데이비드는 미국의 미래 경쟁력에 중요한 두 가지 분야인 AI와 가상화폐에 대한 행정부 정책을 이끌게 될 것”이라며 “가상화폐 업계가 요구해온 명확성을 확보하고 관련 산업이 미국에서 번창할 수 있도록 법적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색스 지명자는 벌써부터 의욕을 다지고 있다. 그는 가상자산 차르에 임명된 직후 소셜미디어 ‘X’에 파산한 실버게이트와 관련된 게시물을 인용하면서 “오퍼레이션 초크포인트 2.0로 인해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다.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썼는데, ‘오퍼레이션 초크포인트 2.0’은 은행의 가상자산 서비스와 가상자산 기업의 은행 라이선스 발급을 금지한 행정제재다. 색스가 인용한 게시물은 “규제 기관이 2023년 봄에 디지털 자산 고객을 위해 보유할 수 있는 미국 달러 예금 금액을 심각하게 제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두고 색스가 업무 초기부터 가상자산 업계와 관련된 규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 볼 것임을 내비쳤다는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색스는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에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정부에서 사사건건 가상자산 업계와 마찰을 빚었던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도 친 가상자산 인사를 지명했다.
새 SEC 위원장으로 낙점되는 이는 폴 앳킨스 전 SEC 위원으로 현재 가상화폐 및 디지털 자산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자문서비스 등을 하는 파토맥 글로벌 파트너스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부터 디지털상공회의소의 토큰 얼라이언스 공동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재임 때인 2002년부터 2008년까지 SEC 위원으로 재직했는데, 이때부터 규제 완화론자로서 목소리를 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앳킨스 후보자에 대해 “상식적 규제를 위한 검증된 리더”라고 평했다.
하지만 트럼프 측의 가상자산 행보와 관련된 것 중 백미는 아마도 ‘비트코인을 전략자산화하겠다’는 최종 입장일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비트코인의 전략자산화를 결정하는 것은 비트코인 역사에서 ‘피벗 이벤트’가 될 수 있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정해 비축을 한다면, 글로벌 각국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고 발행 총량이 제한된 특성상 그 희소성에 대한 가치는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가격으로 이야기하자면 현재의 10만 달러 수준도 긴 시간의 흐름에서는 낮은 가격일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비트코인 전략 자산화에 대한 의지는 2024년 7월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처음 내보였다. 대선을 앞둔 표심 공략 차원에서 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선언적 의미에 그치진 않았다. 7월 말 친가상자산 인사인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비트코인 비축 법안’을 발의하면서 힘을 보탰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향후 5년간 매년 최대 20만 개의 비트코인을 매입해 총 100만 개를 확보하고, 이를 20년 동안 팔지 않고 보유하는 것이다. 또 법안에는 각 주별로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내용도 담겼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가시적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와 텍사스 주에서 주(州) 정부 차원에서의 비트코인 전략 자산 비축법안이 발의됐고, 현재 10여 개 주에서 유사한 법안이 발의 예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법안 통과인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특히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 연방정부 차원에서 통과는 현재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일종의 정치적 판단만 남아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中·러 비트코인 전략자산화 고심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중·러 등 세계 주요국들도 비트코인 전략자산화를 고심하고 있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전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중국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아마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비트코인 전략적 준비자산화 전략의 전철을 중국도 밟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움직임은 좀 더 구체적이다. 최근 안톤 트카체프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원이 정부에 국가 차원의 전략자산으로 비트코인 비축을 공식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한 투자 회의에서 “비트코인은 유용한 자산이며 달러처럼 쉽게 금지할 순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기관들의 비트코인 매수 열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 승리 이후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12개 펀드 발행사의 비트코인 직접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액이 100억 달러(약 14조 35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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