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장기화' 공포에 휩싸이면서 한국이 미국 정부로부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0월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했다. 무역 흑자와 경상 흑자 때문이다. 한 단계 높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투자 제한 등 제재를 받게 된다. 정부가 환율 안정 등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국 혼란이 장기화할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거래 종가(15시30분)는 전일 대비 0.3원 내린 1431.9원을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3.1원 내린 1429.1원에 개장했다. 이날 새벽 2시 마감가(1430.9원) 기준으로 1.8원 내렸다. 1430원 안팎을 오가던 환율은 오전 윤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담화 후 반등하기 시작해 1430원대까지 올랐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야당이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라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이미 말씀드린 바 있다"고 밝혔다.
이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은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 집행 정지를 시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며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탄핵소추안 통과 과정 자체로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정치적 혼란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커질것으로 우려했다. 원·달러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당국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당국이 지닌 '키'에도 제한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선 통화스와프를 통해 원화 가치를 올리는 것도 제한이 있을 수 있다. 통화스와프란 양 기관이 일정 기간 서로 다른 통화를 맞교환하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등 국제적인 이슈가 아닌 한국 내에서의 정치적 이슈다 보니 미국 등 상대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주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환율이 큰 폭으로 뛰는 것을 막을 순 있지만 향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에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며 "결국 정치적 안정이 와야만 환율 불확실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매년 4월, 10월 두차례에 걸쳐 거래하는 국가의 외환시장 개입 수준에 따라 환율관찰대상국을 지정한다. 그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작년 10월 한국은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됐다. 무역 흑자와 경상 흑자로 인해 관찰대상국에 올랐다. 한국은 2016년부터 7년간 환율관찰대상국에 올랐으나, 지난해 11월과 지난 6월 2회 연속 명단에서 빠졌다가 다시 지정됐다. 한국 외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독일 등 7개국이 지난달 10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은 해당 국가에 대해 환율 저평가 및 지나친 무역흑자 시정을 요구한다. 1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해당국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 제한, 해당국 기업의 미 연방정부 조달계약 체결 제한, 국제통화기금(IMF)에 추가적인 감시 요청 등의 구체적인 제재 조치를 취하게 된다.
[연합뉴스]
주형연 기자(jhy@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