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순대외채권 등
대외충격 대비 능력은 양호
문제는 사상최악 ‘부채 폭탄’
정부 부채, GDP 50% 첫 돌파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 = 픽사베이]
비상계엄, 탄핵 등 정국 혼란이 계속되며 한국 경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역대 경제위기 국면과 현재 경제 상황을 비교할 때 최대 리스크는 정부와 민간에 쌓인 6000조원에 가까운 부채다.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역대 최장 기간 내수침체를 겪고 있는 것도 위기 요인이다. 서민 경제와 일자리에도 직격탄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수출도 내년에는 꺾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재정·통화정책이 절실하지만 녹록지 않다. 미국이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릴 경우 한은의 완화적 통화정책도 발목이 잡힐 수 있다. 막대한 부채로 적극적인 재정정책도 한계가 있다. 다만 외환보유액, 단기외채 규모 등 한국의 대외 ‘펀더멘털’이 위기를 막는 안전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2일 매일경제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2020년 코로나19 위기, 윤석열 대통령 계엄 사태 등 5개 경제위기 국면을 비교해본 결과 현재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부채 문제였다. 분석을 위해 한은, 통계청, 국제기구, 국제신용평가 등에서 발표하는 10여 개 경제지표를 활용했다.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단기외채와 외환보유액이었다. 당시 외환보유액은 73억달러뿐이었다. 반면 단기외채는 584억달러나 됐다. 경상수지도 108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800원대였던 달러당 원화값은 단숨에 1900원대까지 폭락했다.
당시 국가채무나 재정적자 문제도 없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1.1%에 불과했다. 통합재정수지는 GDP 대비 2.3% 흑자였다.
IMF 사태 이후 외환보유액은 꾸준히 늘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24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도 IMF 때는 800%에 달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60.8%에 그쳤다. 지금도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가 넘고, 단기외채비율은 38.2%로 양호하다.
외국에서 받을 돈이 줄 돈보다 많은 순대외채권국이라는 점도 IMF와 글로벌 경제위기 때와 상황이 다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경제가 거의 충격을 받지 않았는데 순대외채권이 4000억달러에 육박했고, 외환보유액도 3700억달러가 넘었다. 국가채무도 626조원에 그쳤다. 재정수지도 GDP 대비 2.2% 흑자였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8~9년 전은 물론이고 IMF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도 우리 경제의 근간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2020년 3월에 닥친 코로나19 대유행은 국가부채를 급격히 늘렸다. 코로나19 유행 당시만 해도 국가부채는 846조원이었지만 10월 현재 지방정부를 뺀 중앙정부 채무만 1155조원에 달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36%였고, 코로나19 대유행 때 43.6% 였지만 현재 45.3%에 달한다. 코로나19 위기 수습 과정에서 재정을 과도하게 쏟아 부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제 비교에 사용되는 일반정부부채(D2)는 작년 말 1217조원을 기록하며 2011년 통계를 집계한 이후 사상 처음 GDP 대비 50%를 돌파했다.
[사진 = 연합뉴스]
가계부채도 1900조원 넘게 쌓여 있다. 기업부채는 2700조원에 달한다. 국가채무와 가계·기업부채까지 합치면 5780조원으로 올해 6000조원 돌파가 유력한 상황이다. 국민과 기업이 1년 동안 일해 벌어들인 GDP가 2500조원인데 빚이 2.5배에 달하는 셈이다.
빚더미 위에 앉아 있다는 뜻은 정부나 기업, 가계가 쓸 돈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소비위축, 내수침체로 직결된다. 현재 소매판매는 역대 최장 기간인 10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 중이다. 탄핵정국 여파에 소비심리는 더욱 움츠러들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소비침체가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 더 나빠질 수도 있다”며 “정부는 확정된 내년 예산을 1분기에 집중적으로 집행하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더 빨리 내려야 내수침체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IMF 사태 때를 제외하면 소매판매가 위기 직후부터 빠르게 회복했다는 점이다. 소매 판매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그해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후 이듬해인 2009년 2월 전년 동월 대비 3.9% 감소하며 바닥을 찍고 회복했다. 2016년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소매판매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는 그해 3월에 10.4% 급감했지만 이후 V자 회복을 보였다.
내년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으로 수출 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2016년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2017년 1월 미국에서 트럼프 1기 정부가 출범했지만 수출은 그해 15.8% 성장해 과도한 우려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지웅 기자(jiwm80@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