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올 한해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말 대비 9% 넘게 하락하며 동학개미(국내주식 투자자)에게 암울한 한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정부가 연초부터 추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과 4년 5개월만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국내 투자환경은 녹록지 못했다.
하지만 연중 먹구름이 끼었던 한국 주식시장에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분야도 있다. 역대 최대 수출에 톡톡히 기여한 K방산·K뷰티·K푸드가 대표적이다. 세 섹터는 올해 주가가 전년 대비 100% 이상 오르는 등 주춤한 한국 증시에서도 한 줄기 빛이었다. 수년에 걸쳐 새로운 해외시장을 모색해온 뷰티와 푸드, 전쟁 등 지정학적 변화와 대규모 해외 수주에 호재를 맞은 방산이 본격적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분석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섹터 내 전 종목이 골고루 성장한 건 K방산이다. 동유럽, 중동 등지에서 수출 경쟁력을 입증한 국내 방산업체가 잇따라 공급 계약을 하면서 올해 방산 5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LIG넥스원·현대로템·한화시스템)의 영업이익은 2조원을 돌파,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한화에어로(121%), 현대로템(82%) 주가가 크게 오르며 5사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58%에 달했다. 이태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2020년까지만 해도 시가총액이 1조원이 넘는 기업이 없었는데,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시가총액은 14조원대”라며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K방산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며 대표 섹터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주요 수출국이었던 중국에서 벗어난 K뷰티는 중소형사 위주로 매출액이 급성장하면서 연중 주식시장을 달궜다. 뷰티 유통기업인 실리콘투는 올해 코스닥 시장에서 300% 가까이 주가가 올랐고, 그간 대형사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인디 브랜드(중소기업 브랜드)인 브이티(122%), 토니모리(42%) 등도 주가가 폭등했다. 박현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에서 시작된 K뷰티 열풍이 전성기 2년 차를 맞아 미국으로 확장됐고, 최근에는 본격 유럽, 중동으로까지 퍼지면서 호황기를 톡톡히 누렸다”며 “대형사는 여전히 주춤했지만, 중소형사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 오르며 입지를 넓혔다”고 평가했다.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한 K푸드에서는 삼양식품이 독보적인 저력을 보였다. 주가가 연초대비 223%가량 오르며 내수부진 타격을 입은 음식료 업종의 성장을 주도했다. 올해 코스피 전 종목 중 두 번째로 높은 주가 상승률이다. 소비 부진으로 내수 판매는 한계에 부닥쳤지만, 올해 매출의 70% 이상을 수출이 차지하면서 부진을 상쇄했다는 평가다. 정한솔 대신증권 연구원은 “라면, 만두, 과자 등 K푸드 중에서도 가공식품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던 한 해”라며 “환율 상승 수혜와 내년 공장 증설 등으로 해외 매출 성장세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저성장의 여파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지만 세 섹터는 압도적인 성장세와 소비시장의 회복, 고환율 등의 영향을 받아 내년에도 무난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박 연구원은 “미국 내 K뷰티 시장점유율은 1%도 채 안 돼 확장 여력은 아직도 매우 높은 상태”라며 “내년에도 최소 10~20% 수준의 매출 상승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방산은 대통령 탄핵 등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언제 해소되느냐에 따라 내년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연말 계약 예정이었던 폴란드 K2 2차 계약이 계엄 여파로 보류된 데다 방산기업을 방문하려던 스웨덴 총리의 방한 일정이 미뤄지는 등 신규 시장 진출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어서다. 그러나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하지 않은 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기업의 근본적인 가치 훼손이 없는 한 2025년에도 수출 증가는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