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미 “흡입력 2만 파스칼”
진공도를 흡입력으로 호도해
전문가 “와트 측정이 더 정확”
IEC, 내달 한국서 첫 회의
연말께 투표로 표준안 마련
드리미의 신제품 ‘X50울트라’. [사진 출처 = 드리미]
“더 강하지만 조용한 2만파스칼(Pa)의 흡입력”.
샤오미 산하 무선청소기·로봇청소기 브랜드인 드리미가 이달 최신형 로봇청소기 ‘X50 울트라(Ultra)를 선보이면서 내건 광고 문구다. 드리미는 광고를 통해 “강하지만 조용한 2만파스칼 흡입력”이라며 “앞자리(숫자)를 바꿔버린 드리미의 기술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주석으로 “드리미랩에서 자체 테스트한 최대 흡입력으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표기했다.
중국 로봇청소기 업체를 중심으로 22일 ‘파스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드리미가 “숫자를 바꿨다”고 강조한 것 역시 로보락이 작년 11월 로봇청소기 ‘큐레보 커브(Qrevo Curv)’를 선보이며 “흡입력이 1만8500파스칼에 달하고 업계 최대 수준”이라고 주장한 데 대한 맞불 공세다.
하지만 청소기 흡입력의 잣대로 압력 단위인 파스칼을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를 호도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파스칼은 1㎡ 면적에 1뉴턴의 힘이 수직으로 작용할 때 발생하는 압력이다. 예를 들어 빨대를 입에 물고 공기를 빨아들이면 빨대 속 공기가 줄어들어 진공이 형성되는데, 이때 빨대 내·외부 압력차가 파스칼이다. 빨대 구멍이 작으면 작을수록 파스칼은 높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세게 빨아도 빨대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량이 제한될 수 있다.
때문에 청소기 내부에서 형성된 진공(압력 차이)인 파스칼보다는 청소기의 모터 출력인 실제 먼지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인 와트(W)로 측정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설명이다.
임성수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청소기는 모터 성능, 공기를 빨아들이는 경로 설계 등이 다 반영돼 흡입력이 결정이 되는 구조”라면서 “파스칼은 흡입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인 모터의 성능만을 가리키는 것이고, 흡입력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위는 와트”라고 설명했다. 파스칼만 갖고 청소기가 효과적으로 흡입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 업체들도 광고에 파스칼 단위를 적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내 업체는 보다 정교하게 출력을 표기할 때는 와트를, 진공도를 표기할 때는 파스칼(흡입력 병기)로 적고 있다.
현재 나와 있는 제품 가운데 파스칼이 가장 높은 곳은 중국 업체가 아닌 쿠쿠가 선보인 ‘파워클론 로봇청소기 AI 올인원 스테이션’으로 2만5000파스칼이다. 하지만 쿠쿠는 해당 제품 광고에서 흡입력(진공도)으로 병기표기했다. 또 삼성전자 ‘비스포크 제트 봇 AI’(1만3000파스칼), LG전자 ‘코드제로 로보킹 AI 올인원’(1만파스칼) 역시 로봇청소기를 내놓으면서 진공도로 표기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업체는 흡입력 단위로 파스칼만을 적고 있어 논란이다. 국제 사회는 이런 혼선을 막고자 다음달 공식적인 표준 작업에 돌입한다. 전기·전자 기술 관련 국제 표준을 제정하는 기구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는 다음달 한국에서 첫 회의를 열고 로봇청소기 흡입력 기준 표준화 작업에 돌입한다. 중국 업체들이 규정 공백 상태를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홍보·광고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행보다.
IEC 표준화 관련 워킹그룹의 의장을 맡고 있는 임 교수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이 와트 단위 사용에 동의하고 있어 와트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종전 스틱형 유무선 청소기는 IEC 평가 규격에 따라 공식적인 흡입력 기준으로 와트다. 반면 로봇청소기는 현재 평가 규격이 없다. 때문에 로보락, 에코백스, 드리미 등 중국 업체들은 파스칼을 흡입력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IEC는 올해 2월(한국), 6월(프랑스), 11월(미국) 세 차례 회의를 열고 연말께 투표를 통해 기준안을 마련할 전망이다. 해당 논의는 IEC 내 진공청소기 및 로봇청소기의 성능 측정을 위한 국제표준을 개발하는 분과위원회인 SC 59F가 주도한다. 회의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 국내 가전업체와 관계기관도 참석할 예정이다. 연말 투표를 거쳐 내년 초 표준안이 마련될 경우 한국산업표준(KS)으로 반영될 전망이다. KS 도입 시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은 유통이 금지될 수 있다.
임 교수는 “현재 규정이 없어 허점을 이용해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홍보·광고하는 기업들이 있다”면서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와트가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와트를) 반대하는 게 잘 통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달 회의에서는 흡입력 기준뿐 아니라 구석 청소의 효율 성능을 평가하는 방법, 물 청소되는 습식 청소기의 성능 표준안 역시 함께 논의된다.
박승주 기자(park.seungjoo@mk.co.kr), 이상덕 기자(asiris27@mk.co.kr), 박소라 기자(park.sora@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