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BC, 22일 RFI 등록… 대만 은행 중 최초
유안타, 2월 등록 앞둬… “은행 1~2곳 더 타진”
獨·佛 은행도 관심… “韓 시장 투자 확대 기대”
대만계 은행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한다. 대만은 원화를 이용해 환 헤지를 하는 금융기관이 많은 곳이지만, 그간 국내 시장에서 직접 거래를 하지는 않았다. 작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외환시장 구조개선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등으로 원화 수요가 더욱 증가하면서 시장 개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대만 최대 민영은행인 ‘중국신탁상업은행(CTBC)’은 해외 외국환업무취급기관(RFI)으로 등록됐다. CTBC은행은 지난해 영국 금융전문지 ‘더 뱅커’가 선정한 500대 글로벌 은행 중 111위에 오른 은행이다. 대만 금융 브랜드 중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금융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다.
RFI는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해도 된다는 인증을 받은 해외 금융기관이다. RFI로 등록되면 국내에 지점을 두지 않고도 외국인 고객에게 원화 환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총 42개 기관이 RFI로 등록돼있다.
지난1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재부에 따르면 CTBC 외에도 유안타은행 대만본점이 다음 달 초·중순 RFI 등록을 앞두고 있다. 유안타은행은 대만 민영은행 중 7번째로 운용 자산 규모가 큰 곳이다. 그 밖에도 대만계 은행 중 1~2곳이 등록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처럼 대만계 은행이 잇따라 한국 외환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의 국적도 다변화됐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그간 우리나라에 투자하지 않았던 국가의 금융기관이 외환시장에 들어오면 새롭게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대만계 은행들이 국내 외환시장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환 헤지 수단으로 원화를 자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환 헤지에는 자국 통화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대만 통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만 투자자가 한 달 뒤에 미국 돈 1달러를 매수해야 하는 경우 이 투자자는 한 달 뒤에 자신이 원하는 환율로 미국 달러를 매수하는 선물 계약(선물환 매수)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환 위험을 헤지할 수 있다.
그러나 대만 달러처럼 거래량이 적은 통화로는 원하는 만큼 선물 계약을 체결하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 자국 통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면서 유동성이 풍부한 통화를 사용해 특정 환율로 미국 달러를 매수하는 NDF(역외선물환·원금의 교환 없이 차액만을 주고받는 선물환 거래) 계약을 맺어 환 위험을 헤지할 수 있다. 이런 투자기법을 ‘프록시 헤지’라고 말한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대만 은행들은 보험사를 주 고객으로 삼고 있어 환 헤지가 중요한데, 대만 달러를 사용하면 환 헤지 규모나 방법이 제한돼 장외시장에서 원화 NDF거래를 많이 한다”면서 “그런데 NDF 거래를 하려면 수수료가 만만치 않아 예전부터 한국시장에 직접 들어와서 거래하길 원하는 기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대만계 은행 외에도 여러 외국계 은행이 국내 외환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독일 최대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와 프랑스 2위 IB인 나틱시스, 캐나다 2위 은행인 토론토도미니언(TD), 글로벌 3대 신탁은행인 미국 노던트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내에 지점을 둔 적이 없거나 과거에 영업하다가 철수한 곳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외국계 은행들이 RFI 등록 절차를 밟는 것에 올해 11월로 예정된 WGBI 편입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WGBI는 블룸버그-바클레이즈 글로벌 종합지수(BBGA)와 JP 모건 신흥국 국채지수(GBI-EM)와 함께 세계 3대 채권지수로 평가된다. 이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는 약 2조5000억~3조 달러에 달한다. 정부는 WGBI 편입으로 약 75조원 규모의 자금이 국채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작년 7월부터 시작한 외환시장 접근성 개선 조치들도 한국 시장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 외환당국은 작년 7월부터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외환시장 개장시간을 익일 새벽 2시까지 연장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RFI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올해 상반기 중 ‘선도 RFI 도입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바 있다.
외환당국은 앞으로도 구조개선을 통해 외국계 금융기관의 진입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은 RFI로 등록하면 증권과 파생상품(선물환거래 포함) 등 자본 관련 거래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급여나 임대료 지급 등 경상거래까지 가능하도록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온정 기자 warmhear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