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금리 인하·비트코인 공약에 반기 들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8일 “향후 금리 조정에 있어서는 더 신중해야 할 것”이라며 내년에 금리 인하 속도를 기존보다 늦출 것임을 시사했다. 저금리를 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대립각을 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2017년 11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파월 연준 의장 지명자를 소개하는 모습./게티이미지코리아
“연준 위원들이 금리를 전망할 때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을 감안했습니다. 일부 위원들은 (트럼프 2기의) 정책 불확실성이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을 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18일 기준금리를 연 4.25~4.5%로 0.25%포인트 낮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불확실성을 리스크(위험 요인)로 꼽았다. 관세 인상, 불법 이민자 추방 등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물가를 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연준은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물가가 내년에 2.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3개월 전만 해도 2.2% 오를 것으로 봤는데, 물가 잡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물가가 튀는 주요 요인으로 트럼프를 지목한 것이다.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 추가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파월을 비롯한 FOMC 위원들은 내년 인플레이션 강도가 당초 예상보다 거세질 것으로 예상해, 내년 연준의 금리 인하 횟수를 기존 4차례가 아닌 2차례로 수정하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한 달 뒤인 다음 달 20일 공식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와의 갈등을 예고하는 서막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연준, 트럼프 계획에 찬물
기준금리를 낮추기를 원하는 트럼프, 그러나 꿈쩍하지 않는 파월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애초 트럼프는 2018년 공화당원인 파월이 자신의 저금리와 금융 규제 완화 기조를 따를 것으로 기대하고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파월은 트럼프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파월의 연준은 미국 경기 호황을 반영해 2018년 3·6·9월에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높였다. 트럼프 정부 2년 차 때였다. 금리가 낮아 돈이 시중에 넘쳐나야 중간선거와 재선에 유리한 트럼프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그해 11월 중간선거 직전 주가가 급락하자 연준이 시중 돈을 다 빨아들였기 때문이라며 “연준이 미쳤다고 본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트럼프의 공격에도 연준은 12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더 올렸다.
그래픽=송윤혜
당시 트윗 한 줄로 장관급 관료를 날려버리던 트럼프도 파월을 어쩌지 못했다. 연준법에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파월을 연임시켰고, 트럼프와 파월은 대통령과 연준 의장으로 다시 만났다. 그간 트럼프는 변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17일 “트럼프는 중앙은행이 낮은 금리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리고 금리가 낮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트린다”고 했다.
트럼프는 올해 대선 직전에는 연준의 금리 인하가 민주당 정권을 돕는 ‘정치적 행위’라며 파월의 금리 인하를 반대했었다. 하지만 파월은 트럼프의 경고에 아랑곳없이 대선 전인 9월 0.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대선 승자가 된 후 트럼프의 입장은 금리 인하파로 선회했다. 금리를 낮추고 달러 가치를 낮춰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이 트럼프 계획에 찬물을 끼얹게 됐다.
◇비트코인 둘러싼 전선 형성
이날 트럼프와 파월의 전선(戰線)이 하나 더 추가됐다. 파월 의장은 이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트코인의 전략적 비축에 대해 연준이 관여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연준)는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없다”고 했고, 비트코인 비축을 위한 제도 마련에 대해서도 “의회가 고려할 사안으로, 연준은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미국을 가상 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겠다” 등의 발언을 내놓았다. 가상 화폐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연준이 준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7000억달러어치의 금(金)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바꾸겠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를 파월이 거부한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10만8000달러를 오가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한때 10만달러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유세 때 “비트코인을 팔지 말라”고 말하며 비트코인과 가상 자산 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트럼프와 반대편에 선 것이다.
◇“경기냐 환율이냐” 한은의 딜레마
향후 금리 인하에 대한 파월의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으로 원·달러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하락)하면서 다음 달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연준이 향후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방침을 시사하면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1450원을 넘었다. 내년 1%대 성장률로 추락하는 경기 방어를 위해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금리 인하가 원화 약세(달러 강세)를 부추길 가능성이 부담으로 남게 됐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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