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벨트의 최고경영자 피터 칼슨이 22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 최대 배터리 셀 제조사인 스웨덴의 노스볼트가 파산하며 그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후퇴)을 견디지 못한 신생 배터리 업체들이 퇴출되는 구조조정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장악해가는 중국 업체들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26일(현지시각) 노스볼트 최대 주주인 유럽의 완성차업체 폴크스바겐그룹이 보유 지분을 대거 상각(회계상 손실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019년 9억유로(1조3200억원)에 이어 지난해 추가로 5억유로(7338억원)를 투자한 폴크스바겐그룹은 이 회사 지분 21%를 확보한 최대주주다. 아직 정확한 상각 규모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유 지분을 전액 상각할 경우 노스볼트 투자로 인한 손실 규모는 최대 2조원에 이르는 셈이다.
폴크스바겐 뿐 아니다. 노스볼트 지분 19.2%를 가진 골드만삭스 역시 지난 23일 보유 지분을 전액 상각하며 1조원 가량의 손실을 입었다. 신생 유럽 배터리 제조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완성차 업체들과 투자자들로 파산 여파가 확산하는 셈이다. 노스볼트는 지난 21일 미국 법원에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챕터11은 기업이 영업을 이어가며 채무를 조정하게끔 해주는 보호 절차로 한국의 회생절차와 비슷하다.
2016년 테슬라 임원 출신인 피터 칼슨이 창업한 노스볼트는 지금까지 150억달러(약 21조원)가 넘는 투자금을 끌어모으며 유럽에서 가장 자금력이 탄탄한 배터리 스타트업으로 꼽혀왔다. 폴크스바겐, 베엠베(BMW) 등 유럽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과 맺은 공급 계약 규모도 550억달러(약 77조원)에 이르렀다.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의 입지를 넓혀갈 이차전지 ‘총아’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셈이다.
그러나 노스볼트가 지난 21일 미국 법원에 낸 파산 신청서를 보면, 이 회사의 총 부채는 58억달러인데, 보유 현금은 3천만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63억 달러 수준이던 부채는 소폭 줄었지만, 보유 현금이 21억3천만달러에서 급감했다. 비상장사인 탓에 분기보고서가 공시되지 않아 정확한 사정을 알기 어렵지만, 올해 6월 베엠베와 20억달러 규모의 장기 공급계약이 파기된 게 유동성 위기를 불러온 계기가 됐을 수 있다. 앞서 베엠베는 노스볼트가 납품 기일과 물량을 맞추지 못하자 2020년 체결한 장기 공급계약을 파기하고 이 물량을 삼성에스디아이(SDI)에 맡긴 걸로 알려졌다.
노스볼트 파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을 선점한 중국과 한국의 대형 업체들 위주로 배터리 산업의 판도가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종일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유럽이나 중국의 신생 업체들의 경우 신규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추가 도산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내 업체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중국 밖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부상을 견제하는 정책의 ‘보호막’ 효과도 있다. 다만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에서 중국에 뒤쳐지지 않아야하는 과제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북미와 유럽에서 공장을 운영해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럽 신생 업체들이 정리되면 국내 업체에게 제한적이나마 반사 이익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