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0% 수준… 적용 땐 10~20%로
“방위비 협상 카드로 쓰일라”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첫날부터 중국·멕시코·캐나다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예고하자 국내 기업들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 대선 기간 내내 집중포화를 맞은 반도체 업계의 우려가 크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 수출품에도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경우 발생할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비판하며 그 대신 관세를 부과해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는 관세 부과의 실현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는 분위기였다. 해외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는 완제품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만큼 억지로 밀어붙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지난달 기준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6%로,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2.0%를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 정책의 첫 타자로 중국·멕시코·캐나다를 구체적으로 지목하자 낙관주의는 한풀 꺾였다. 미국의 최대 우방국으로 꼽히는 캐나다마저 관세 대상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자 한국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됐다는 기류다. 현재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은 대부분 0% 수준이지만 트럼프 정부의 보편적 관세가 적용되면 10~20%로 오른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분야 타격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액(방위비 분담금) 조정 등 외교적 문제에 대한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관세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이 이날 내세운 중국·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 명분은 보건·이주 등 비(非)산업계 문제였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서는 불법 이민자 차단을, 중국에 대해서는 펜타닐 유입 금지를 요구했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경제적 우방국이지만 이런 울타리도 현 상황에서는 믿기 어렵다. 멕시코와 캐나다도 미국과 FTA의 일종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맺고 상호 무관세 정책을 유지하기로 약속한 사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무시하고 관세 부과 의지를 내비쳤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특정 정책 노선을 가정하고 경영 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렵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내년 1월 취임식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