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재정 집행 강력 반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지명자. 베센트가 재무장관에 지명되자, 그간 트럼프 당선 이후 채권 금리 상승, 달러 강세로 움직이던 미국 금융시장이 채권 금리 하락, 달러 약세로 방향을 바꿨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10년물 국채 금리가 계속 올라 연 4.5%도 넘었는데, 갑자기 왜 하락세로 돌아선 건가요?”(미국 장기채 투자자 이모씨)
최근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수혜 자산에 투자)’로 급등세를 보였던 미국 국채 금리가 25일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연 4.27%대에서 마감했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이 올라 채권 투자자들은 환호한다.
이날 채권 금리 하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2일 스콧 베센트를 재무장관으로 지명한 소식이 영향을 미쳤다. 마경환 GB투자자문 대표는 “베센트는 바이든 정부의 방만한 부채 조달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등 재정을 아껴 쓰자는 재정적 매파(Fiscal Hawk)”라면서 “베센트가 트럼프 행정부의 과격한 관세 정책을 중화시킬 것이란 기대감에 시장이 안도했다”고 말했다. 베센트 지명은 또 트럼프 재집권으로 감세 등을 추진하면 재정 적자가 커지고 이를 메꾸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면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바꿔버렸다.
이날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평균도 전날보다 1% 오른 4만4736.59에 마감해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그래픽=김하경
✅40년 경력 투자 베테랑
미국 재무부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최상위 부처 중 하나로, 재무장관의 영향력은 경제정책 전반에 광범위하게 미친다.
이 자리를 꿰차게 된 베센트는 헤지펀드 매니저와 운용사 최고경영자(CEO)로 40년 넘게 자본시장에서 일한 투자 베테랑이다. 1984년 예일대(정치학)를 졸업한 베센트는 투자은행 등을 거쳐 1991년 전설적인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 회사(소로스 펀드)에 취직했다.
소로스 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로 큰돈을 벌었는데, 당시 영국 주택 시장의 취약성을 심층적으로 다룬 베센트의 분석 보고서가 단서가 됐다고 한다. 2011~2015년 소로스 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일하던 때는 엔화 약세를 예상하고 일본 증시에 베팅해 큰 성공을 거뒀다.
2015년 독립한 베센트는 소로스에게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투자받아 ‘키스퀘어’를 설립했다. 그는 주로 금리, 환율, 무역, 정치적 이벤트 등 거시경제 지표와 동향을 예측해 자산을 배분하는 매크로 투자 전략을 구사했다.
베센트는 1990년대 영국 파운드화 가치 폭락,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등 굵직한 글로벌 경제 이벤트를 직접 겪은 만큼, 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노믹스 본뜬 ‘3-3-3′ 정책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센트가 일본의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3개의 화살(Three Arrows)’을 모방한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경기 부양책인 ‘3개의 화살’은 금융 완화, 재정 정책, 구조 개혁이었는데, 베센트는 이와는 다른 ‘3-3-3′ 정책을 제안했다. 3-3-3은 2028년까지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까지 삭감하고, 하루 300만배럴 상당의 원유 증산, 규제 완화로 GDP 성장률 3% 실현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구성돼 있다.
마경환 대표는 “고물가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국민이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택한 만큼, 베센트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원유 생산을 늘리고 각종 규제를 풀어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가는 신임 재무장관에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대규모 감세 정책이 재정지출 확대로 이어져 글로벌 채권 시장에 수급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실제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9월 중순 연 3.6%대 수준에서 지난 15일 연 4.5%까지 돌파하기도 했다.
JP모건은 “재무장관은 궁극적으로 행정부 재정 정책에 대해 최종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자리인데, 베센트는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마경환 대표는 “베센트 신임 재무장관은 무모한 재정 적자 확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라 채권 시장이 안도했다”고 했다.
이경은 기자 div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