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대통령’ 온다…펄펄 끓는 코인
韓, 투자보다 세금…‘프리미엄’ 실종
최근 국내 가상화폐 거래 금액이 주식 시장 전체 거래 대금을 훌쩍 뛰어넘는 이례적인 현상이 빚어진다.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국내 5대 가상화폐 거래소에선 코스피·코스닥 거래 대금을 아득히 추월한 하루 20조원이 거래된다. 가상화폐 파죽지세가 전통 금융 시장을 집어삼킬 기세다. 올 들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과 미국 대선을 거치며 변방에서 중앙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블랙록, 피델리티 등 글로벌 금융사가 앞다퉈 출시한 비트코인 ETF는 미 ETF 역사상 가장 크고 화려한 성공을 거뒀단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금융 시장 헤게모니가 바뀔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가상자산 규제는 바이든 행정부 과오로 작용했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한 트럼프는 가상자산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백악관을 탈환했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미국을 가상화폐의 수도, 비트코인 슈퍼파워로 만들겠다”고 했고 미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지정해 비축하겠단 계획도 내놨다. 상황이 이렇지만, 우리 규제당국은 현물 ETF 등 투자는 막아놓고 정치권에선 세금부터 매기겠다고 벼른다. 이대로는 한국이 가상화폐 ‘갈라파고스’로 전락할 처지다. 가상화폐 ‘르네상스’ 시대 위기와 기회 요인을 진단한다.
‘크립토 프레지던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집권으로 ‘가상화폐 르네상스’ 기대감이 무르익는다. ‘대장주’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초로 9만달러를 넘어서는 등 디지털자산(가상화폐·암호화폐) 가격 상승세는 좀처럼 꺾일 줄 모른다.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과 미 대선을 거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가상화폐가 트럼프 집권 기간 제도권 금융 안방까지 꿰찰지 세계 금융 시장 이목이 집중된다.
비트코인 상승세가 파죽지세다.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뒤 비트코인은 지난 11월 13일 9만3400달러 선까지 치솟는 등 거침없는 상승세를 탔다. 이후 일부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며 상승폭이 다소 줄더니 이내 오름세로 방향을 틀었다. 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지난 11월 21일(현지 시간) 오전 한때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9만5000달러에 육박했다. 특별한 악재가 없는 한 상승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 투자은행(IB) 번스타인은 지난 11월 18일 투자 메모에서 비트코인이 곧 10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며 2025년 목표치를 20만달러로 제시했다.
‘알트장(알트코인 불장)’ 도래 역시 ‘정해진 미래’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알트코인이 상대적으로 제도권 편입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로 ‘디스카운트’를 받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으로 규제 환경이 확 변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트럼프 당선 이후 알트코인 상승률이 비트코인보다 높게 나타난 것에는 이런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美 규제당국 거센 후폭풍
親가상화폐 인물 SEC 수장 될 듯
전문가들은 트럼프 집권 기간 가상화폐와 관련 산업이 제도권 금융 헤게모니를 상당 부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트럼프가 내놓은 가상화폐 관련 공약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비트코인 전략 비축자산화 공약이다. 트럼프는 미국 정부가 현재 보유하거나 향후 획득할 비트코인을 100% 보유하겠다는 내용이다. 금이나 석유처럼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삼겠다는 것. 유동성 확보를 위한 ‘준비자산’이나 국가 안보 핵심인 ‘비축자산’으로 편입 방안 등이 거론된다. 실제 실행 여부를 두고는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 있다. 비트코인의 가치 보존 속성은 아직 세계 통화 체계 내에서 이견 없이 검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레거시 금융’ 잣대로 가상화폐 자산 가치와 시장성에 칼을 대기에는 관련 시장·산업의 위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제는 규제당국이 칼을 빼 들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시장이 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세계 금융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미국 규제당국부터 변화의 후폭풍이 일 전망이다. 코인베이스를 비롯 가상화폐 업체는 1년 전 가상화폐에 비판적인 정치인을 겨냥한 슈퍼팩(super PAC·정치자금 모금 단체) 페어셰이크에 1억7000만달러(약 2369억원) 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슈퍼팩이 지지한 후보 58명 가운데 최소 54명이 당선됐다. 로비 단체 ‘스탠드위드크립토’는 미 의회에서 가상화폐에 우호적인 정치인이 284명, 비판적 정치인이 132명 수준인 것으로 본다.
‘질식 작전 2.0(Operation Choke Point 2.0)’으로 가상자산 업계를 틀어막았던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장부터 갈릴 공산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안티 크립토(anti-crypto·반 가상자산)’ 기조를 주도했던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사임하고 ‘크립토맘’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헤스터 퍼스 위원이 차기 위원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반면, 한국은 이대로는 ‘크립토 갈라파고스’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가격에 ‘역프리미엄’ 현상마저 목격된다. ‘역프리미엄’은 국내 가상자산 매수세에 불이 붙었을 때 나타나는 ‘김치 프리미엄’이 음수가 된단 의미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2017년 규제 환경에 갇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17년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은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를 금지했다. 2021년 특금법 개정안 시행 이후 가상자산 거래소와 계약된 은행은 법인에 실명계좌 발급을 중단했으며 이에 따라 법인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하지 못한다. 가상자산 거래와 가격 형성에 핵심 역할을 할 기관 투자자 손발을 꽁꽁 묶어두고 개인 투자자만 참여하는 기형적인 시장이 된 것이다.
우리 규제당국은 뒤늦게 민간 전문가 중심 가상자산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갈 길이 멀다. 가상자산법 추가 입법, 법인의 가상화폐 계좌·가상화폐 현물 ETF 허용, 스테이블 코인 관련 규제 논의 등 미뤄둔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여부는 가상자산위원회가 다룰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SEC는 이미 올 초 비트코인 현물 ETF에 이어 이더리움 현물 ETF까지 승인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현물 ETF 옵션 거래도 시작됐다.
우리 금융당국은 지금껏 자본시장법이 규정하는 ETF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미뤄왔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가상화폐 과세를 유예 없이 예정대로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여론은 싸늘하다. ‘투자는 못하게 막아놓고 세금부터 매기느냐’는 지적이 들끓는다. 이상복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 금융당국은 새로운 산업에 대해 공부하는 대신 규제를 통해 산업 발전을 막는 데 집중한다”며 “규제를 푼 뒤 산업 변동성이 커졌을 때 ‘역풍’만 우려할 뿐 책임지고 규제를 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