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ODM 세계 1위 코스맥스
산학 협력 강화로 2차 도약 노려
지난달 31일 서울대 공대에 있는 '테크놀로지 인큐베이션 센터'에서 김성재(오른쪽)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와 이은정 코스맥스 책임연구원이 화장품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코스맥스
지난달 31일 서울대 공과대학의 한 연구실에 서울대 교수 6명이 모였다. 이들의 전공은 기계공학, 화학, 농림생물자원학, 디자인학 등으로 제각각이었다. 평소 한자리에 모일 일이 별로 없을 법한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세계 1위 화장품 ODM(연구·개발·생산) 기업으로 K뷰티를 견인하고 있는 코스맥스와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맥스는 자체 브랜드 없이 전 세계 화장품 기업의 주문을 받아 화장품을 생산한다. 단순히 생산만 하는 게 아니다. 자체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 고객사에 제안을 한다. 1992년 직원 3명으로 시작한 코스맥스는 2015년부터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즘 로레알, 에스티로더,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등 세계적 화장품 회사 최고위급 간부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 회사 이경수 회장일 정도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에 빗대 코스맥스를 ‘화장품 업계의 TSMC’라고 부르는 이유다.
코스맥스 제조 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 모습. /코스맥스
일본 기업과의 기술 제휴로 시작한 코스맥스는 2년 만에 자체 연구개발을 하며 홀로 서기에 나설 정도로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회사다. 작은 기업이 초기부터 연구개발에 나서는 건 투자 비용과 인력 확보 등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글로벌 고객사들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경쟁사들의 기술 수준도 빠르게 올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코스맥스가 세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게 바로 서울대, 포스텍 등 국내 대학은 물론 미국 하버드대, 중국 푸단대, 싱가포르 국립대 등 세계 명문 대학과 손잡고 화장품 연구에 나서는 산학협력이다. ‘세계의 머리’를 빌리고 있는 것이다.
코스맥스의 산학협력이 주목받는 건 대학과의 연구가 실제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맥스는 최근 4년여 동안 산학협력에 104억원을 투입해 2510억원의 매출 성장을 이끌어냈다. 기업이 대학에 기부하는 걸로 끝나는 산학협력이 아니라 ROI(투자 대비 효과)를 철저하게 따져봐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연구진에 회사 직원까지 모인 연구실
코스맥스는 2019년 서울대와 공동 연구 협약을 맺고 공대 건물에 ‘테크놀로지 인큐베이션 센터’를 세웠다. 자연대, 공대, 미대, 농생대, 의대 등 여러 단과대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코스맥스 소속 석사급 이상 연구원 5~6명이 같은 공간에서 연구를 함께하며 실시간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2021년 2억원에 불과했던 서울대 산학협력 관련 매출은 2022년 26억원, 2023년 135억원, 2024년 316억원으로 늘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연구 단계부터 제품화 방향을 의논하다 보니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의 연구는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서울대 연구진이 화장품의 보습 기능을 높일 수 있는 복합체를 개발했고, 코스맥스는 이를 A사의 세럼, B사의 선쿠션, C사의 크림 등에 적용한 결과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서상우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신소재가 적용된 수딩 크림은 단일 제품으로만 13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업·대학 ‘윈윈’ 하는 인센티브 체제
산학협력이 익숙한 연구진들을 독려하기 위해 코스맥스는 지극히 ‘기업적인 방식’을 택했다. 일종의 ‘러닝 개런티(흥행 보수)’처럼 높은 매출을 올린 제품의 매출 일부를 연구진에게 포상으로 주는 것이다. 코스맥스는 농림생물자원학부의 기여도를 인정해 누적 매출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인 2500만원을 포상금으로 줬다. 연구를 이끈 윤혜정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는 “포상금은 연구생들이 해외 학회에 참석하는 데 쓰고 있다”며 “학생들이 자기 기술이 대량 생산됐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어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지 배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100여국에 알맞은 기술 개발”
코스맥스는 국내에서 서울대뿐 아니라 강원대, 광주과학기술원, 단국대, 숙명여대, 숭실대, 포스텍, 한양대 등과 기술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에는 향후 5년간 60억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연 매출 2조원의 코스맥스가 이 정도 금액을 외부에 투자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고객들의 주문을 받는 코스맥스의 산학협력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코스맥스는 14일 싱가포르 국립대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대학 매튜 창 의학부 교수와 협력해 균주 개량부터 세포 디자인, 바이오 합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친 협업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매사추세츠 종합병원)와는 마이크로바이옴(피부에 있는 미생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코스맥스는 지난 2011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뛰어들어 제품을 상용화했는데, 전 세계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현재 수출하고 있는 해외 100여 국 각 현지에 알맞은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