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 ‘촉각’
‘100%에서 2000%로.’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달 들어 멕시코산 자동차에 대해 밝힌 관세 공약의 변화다. 당초 100%였던 관세 공약을 지난 7일 위스콘신주 유세에서 200%로 올린다고 했다가 지난 15일 ‘시카고 경제클럽’ 대담에선 최대 2000%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유럽 자동차 업체를 향해선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면, 관세를 내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관세 위협을 통해서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고율 관세에 바탕을 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예고해왔는데, 다음 달 5일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그 공세를 높이고 있다. 내연차 산업이 밀집한 경합주인 러스트 벨트(제조업 쇠퇴 지역) 공략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사진=연합뉴스 /그래픽=이진영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의 자동차 시장이 대선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점점 확실해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다. 미국에서 생산되고 배터리 부품·소재 요건을 충족하는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주는 제도인데, 전기차 전환에 미온적인 트럼프는 이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되더라도 전기차 전환은 다소 느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비록 해리스가 “IRA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기차 의무화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현 바이든 정부보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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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에 비상 걸린 업체들
IRA 존폐, 관세 부과 여부 등 대형 변수가 결정되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기존 전략을 수정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IRA가 시행된 2022년 전후 글로벌 업체들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 현지 투자를 잇따라 선언하거나 공장 가동 시기를 앞당겼는데,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정책이 뒤바뀔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일본 도요타는 북미 시장에서 첫 전기차를 생산하는 시기를 내년에서 2026년으로 미루겠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 미국 GM은 올 하반기 뷰익 브랜드의 첫 전기차 미국 출시를 무기한 연기하고, 내년으로 예정됐던 미시간주 조립공장의 전기 픽업트럭 생산 일정을 2026년으로 미뤘다. 마이클 심코 GM 글로벌 디자인 부사장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11월은 미국이 전기차에 있어 어디로 가는지 판단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책을 모색하는 업체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달 가동하는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당초 전기차만 생산하기로 했지만, 지난 8월 기존 계획을 바꿔 하이브리드 차량도 함께 생산하기로 했다.
고율 관세, 美 업체에 부메랑으로
최근 트럼프는 “중국 업체들이 멕시코에 생산 기지를 지어 미국에 우회 수출을 하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멕시코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를 예고했다. 지난 2018년 자신의 재임 시절 타결했던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을 뒤엎겠다는 것이다.
정작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멕시코에서 수입한 차량은 300만 대 안팎인데, 이 중 절반이 미국 ‘빅3′인 포드, GM, 스텔란티스가 멕시코에서 생산해 들여온 것이다. 이들은 저렴한 인건비와 부품 가격을 위해 멕시코 공장 생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지난 4월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USMCA 폐기에 대해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며 “차 생산 비용과 가격이 급등해 중산층은 더 이상 픽업트럭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도 타격을 피해 가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기준 미국에서 판매된 기아 차량(약 78만 대)중 20% 안팎이 멕시코에서 생산됐고, 현지 진출한 부품 기업들도 여럿이다. 연원호 국립외교원 경제기술안보연구센터장은 “트럼프가 상호주의 관세를 어기고 멕시코에 그토록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의회를 설득해 IRA를 폐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도 “한국 업체들은 대미 무역 흑자가 높기 때문에 미 대선을 주의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영관 기자 ykw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