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정책과 삼성 리더십에 실망한 투자자들 ‘밖으로’
개미도 외국인도 ‘국장’ 불신
코스피 2420·코스닥 690 붕괴
‘트럼프 리스크’ 정부 대응 불신
소극적 주주권익 보호 등 실망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증시 부양을 위해 정부가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도, 여·야·정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도 ‘트럼프 트레이드’ 한 방에 기대 효과가 모두 날아가버렸다. 여기엔 일단 환율 상승과 외국인 이탈 등 수급 측면의 문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전개될 무역 정책 변화에 한국 정부가 잘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국내 증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대장주 삼성전자의 기술 리더십 회복에 대한 불신, 주주권익 제고에 소극적인 정부·기업에 대한 실망감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모두 2% 넘게 급락하며 종가 기준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65.49포인트(2.64%) 하락한 2417.08에 거래를 마쳤고, 코스닥은 20.87포인트(2.94%) 떨어진 689.65에 마감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약 1998조원)은 지난 8월5일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 2000조원을 밑돌았다.
블랙먼데이가 일시적인 주가 급락의 영향이었다면 지금의 주가는 추세적 하락의 결과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증시 부진에는 반도체 업황 부진,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 기조로 인한 수출 전망 악화, 고환율에 따른 수급 부담 등이 영향을 미쳤다. 보다 구조적으로는 정부와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 저하, 주주권익 보호 미흡과 수익률 위축에 따른 외국인과 국내 투자자 이탈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트레이드’ 한 방으로
밸류업·금투세 폐지 힘 빠져
삼성도 위기 타개책 안 보여
장 수익률 격차도 이탈 요인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상대할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추가 악재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관세 폭탄 등 트럼프 2기의 정책 요구에 잘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시에) 제일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주가 폭락 역시 반도체 업황 악화를 넘어 리더십 등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4.53% 급락한 5만600원에 거래를 마치며 4년5개월 만에 최저가로 떨어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응 전략을 시장에 제시하면서 투자자의 불안을 달래줘야 하는데 이런 모습이 전혀 안 보인다”며 “(삼성전자 경영진이) 침묵으로 일관할수록 시장 불안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증시의 수급이 유지된다면 그나마 방어를 기대해볼 수 있지만 외국인과 개인투자자의 국내 증시를 향한 불신도 만만치 않다.
상장사들이 주주권익 보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 증시에선 기업의 성과가 투자로 이어지고 주가가 상승해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외국인과 개인투자자 모두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개미투자자의 부담 완화를 내세워 금투세 폐지에 앞장서는 정치권이 정작 기업 부담을 고려해 상법 개정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커졌다.
벌어지는 수익률 격차도 투심을 악화시키고 있다. 연초 대비 미국 S&P500지수는 약 26% 올랐지만,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9%, 20% 하락했다.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선 “미국 주식에서 (투자수익을 거둬) 세금을 낸다면 국장(국내 주식시장)에선 원금을 낸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국장회의론’에 개미투자자의 해외 증시 쏠림도 가속화하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지난 11일 기준으로 연초 대비 53.6% 증가한 1035억달러(약 145조원)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불신이 자본시장을 넘어서 최악의 경우 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강달러 압력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자본시장 약세가 계속되면 주가 하락 → 투자자 이탈 → 환율 상승 → 기준금리 인하 연기 → 경기회복 지연 → 주가 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