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이후 40% 넘게 올라, 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7월 27일 미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지난 7월 27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절대 비트코인을 팔지 말라”고 했다. 행사에 참석한 수천명 비트코인 신봉자들이 환호했다. 이어 나온 신시아 루미스 미 상원의원(공화·와이오밍)이 종이 한 뭉치를 흔들며 말했다. “이게 바로 비트코인 준비자산 법안입니다. 이게 우리의 루이지애나 매입 순간입니다.” 루이지애나 매입은 미국 정부가 1803년 한반도 면적의 10배 가까운 215만㎢ 땅을 프랑스로부터 1500만달러에 사들인 사건을 말한다. 미국 정부가 루이지애나 매입을 발판으로 서부 개척에 나설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미국이 비트코인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디지털 금융 영토에 깃발을 꼽겠다는 것이다. 청중은 다시 환호했다. 당시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은 6만8000달러였다.
그래픽=양인성
석 달쯤 뒤 트럼프는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비트코인은 랠리를 계속했다. 21일 새벽에는 트럼프 인수팀에서 백악관 입성 후 가상 화폐 정책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백악관 직책을 만들기 위해 가상 화폐 업계와 논의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백악관과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 등 가상 화폐를 관할하는 다양한 기관을 조율하는 역할로, 처음 설치되는 직책이다. 이날 오전 9만4000달러 선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오후에 9만7000달러를 돌파해 10만달러에 근접했다. 미 대선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40% 넘게 상승했다. ‘트럼프 효과’라는 게 일치된 분석이다.
사진=AP 연합뉴스, 그래픽=양인성
◇비트코인, 금(金)처럼 대우받을까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는 것은 상·하원 양원을 장악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비트코인의 위상이 금처럼 격상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루미스 의원이 상원에 제출한 ‘비트코인 2024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은 향후 5년간 매년 20만개의 비트코인을 사들인다. 총 100만개로, 발행량이 2100만개로 정해져 있는 비트코인 총량의 4.8%에 해당한다. 현재 가격으로 치면 970억달러(약 135조원)가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준비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7000억달러어치의 금(金)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법안은 미국이 최소 20년 동안 비트코인을 장기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만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갖고 있는 최대 보유국이다. 미국이 앞으로 80만개가량을 사들여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법안의 취지는 “금 보유액이 국가 경제 안보의 초석이었던 것처럼, 비트코인은 21세기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란 것이다.
월가에서는 비트코인 준비금 정책이 산업 규제 완화와 병행하면 디지털 금융과 관련된 채굴, 에너지 산업 등 연관 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법안 찬성론자들은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저장하면 비트코인의 가격이 상승하고, 정부 자산이 늘어나 만성적인 부채 비율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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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처럼 전략비축할 수도
미국 정부가 금을 팔아 비트코인을 사려면 연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임기가 2026년 5월까지 남아 있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트럼프 당선인과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 2기 정부가 연준을 통하지 않더라도 비트코인을 비축할 우회로도 있다. 비트코인을 원유나 희토류처럼 ‘전략비축’ 품목으로 지정해 사들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국가 안보와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희토류 등 특정 자산을 모으고, 재무부·국방부·에너지부 같은 부처가 관리한다. 1973년 오일쇼크 후 관련 법을 제정해 1977년부터 원유를 비축한 경험이 있다. 비트코인 비축법 또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 환경도 우호적이라 어느 방법으로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비트코인을 비축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준비자산과 전략비축
준비자산(reserve asset)
각국 중앙은행들이 대외결제를 위해 보유하는 자산. 달러 등 기축통화와 금,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 등으로 구성된다.
전략비축(strategic stockpile)
공급이 줄면 혼란이 가중되기 때문에 정부가 평시에 비축하는 물자. 미국은 원유, 백신, 희토류 등을 전략비축 품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