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방위산업 수출 계약액이 100억달러(약 15조원) 안팎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당초 목표한 200억달러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방산 계약은 그 특성상 상대국의 정치 상황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데, 최근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 등으로 '정치 리스크'가 커지자 폴란드 등이 계약을 미룬 것이 올해 저조한 방산 수주 실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29일 방위사업청과 국방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방산 수출 계약액을 100억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방산 수출액은 지난해 135억달러, 2022년 173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올해는 100억달러도 못미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앞서 방사청은 지난 3월 연내 방산 수출액으로 200억달러를 목표했다. 한국산 무기체계에 대한 국제사회 신뢰 상승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영향으로 무기 수요가 늘어나는 점 등을 고려해 목표치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게 당초 정부의 판단이었다.
국방부도 지난달 18일 윤석열 정부의 임기 반환점 통과를 계기로 개최한 국방 분야 성과 브리핑에서 목표 달성을 자신했다. 당시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200억불은 목표치"라면서도 "수출 대상 장비가 늘었고 추가 계약 물량도 있어 실적이 작년(135억달러)보다 많이 늘 것이고 200억불 달성에 상당히 근접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들어선 폴란드, 루마니아, 페루, 이라크 등 총 15건 내외의 방산 무기체계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가장 최근엔 이라크와 1357억원 규모의 다목적 기동헬기 '수리온' 수출 계약이 있었다. 또 연내 폴란드와 K2 전차 820대를 추가 구매하는 내용의 2차 계약 성사가 임박해 올해 실적은 최소 150억달러가 예상됐다.
하지만 폴란드와의 K2 전차 계약 체결이 미뤄지면서 수출 실적도 줄어들게 됐다. K2 전차의 계약 규모는 70억달러 안팎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지난해 12월 정권이 교체되면서 자금 부족을 이유로 한국의 정책금융 지원 없이는 기존 계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 6월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현 국가안보실장)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연내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인접국으로 반(反)러시아 노선을 걷고 있어 무기체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 측이 최근 우리나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약을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게 방산업계의 평가다. 협상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뿐만 아니라 계엄 사태 당시 방한 중이던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즈공화국 대통령은 한국형 기동헬기 생산 현장을 둘러보려던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했다. 한국산 방공 무기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의 공군방공사령관도 연내 방한 계획을 취소했다.
김미정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방산 수출은 제품 경쟁력 뿐 아니라 국가 간 관계와 정치적 영향력이 중요하다"면서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이 상대국에겐 불안정하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신뢰도를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이른바 '빅딜'이 성사되는 정상회담 등 정상외교가 공백인 상황에선 추가 수출도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빨리 안정돼야 방산 무기체계의 수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7년 '방산 수출 4대 강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K-방산 무기체계의 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이번 계엄 사태로 유탄을 맞지 않도록 주요 방산협력국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치적 불확실성만 줄인다면 K-방산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무기체계의 현지 생산, 인력 교육, 무기체계에 대한 '보수·수리·정비'(MRO) 등의 전주기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석종건 방사청장은 최근 방산 협력 주요 29개국에 공식 서한을 통해 "방산 협력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국내 방산업체들의 활동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김인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