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줄어든 수입차 업계 고민 커져
해외 판매 호조 현대차는 이익 늘 전망
꺾일 줄 모르는 고환율이 수입차의 가격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외국에서 차를 들여오는 수입차 업체들은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최근 판매량 감소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현대자동차그룹은 글로벌 판매 비중이 커지면서 역대급 환율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31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수입차 업체들은 최근 급등한 환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원·달러 환율(일일 종가 기준) 평균은 1398.75원으로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원·유로 환율도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에서 차량을 들여와 한국시장에 파는 수입차 업체 입장에선 환율이 높을수록 단가가 오르는 셈이다.
테슬라, 지프, 푸조, 쉐보레, 캐딜락, 혼다 등은 차량을 들여올 때 본국 통화로 결제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토요타, 볼보 등은 원화로 지불한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가격 정책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생산원가가 뛰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올라 내년 사업계획을 짜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환율 변동성이 심한 탓에 신차 출시 일정을 연기하는 방안까지 고민하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환율이 올랐다고 당장 가격이 인상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수입 업체는 분기나 연간 등 장기 계획에 따라 차량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2024년 저조했던 수입차 판매량도 가격 인상을 막는 요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수입차 판매량은 23만9764대로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면 수익성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환율로 인한 피해가 생기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견조한 판매량을 유지하는 게 브랜드 입장에서는 더욱 바람직하다. 차량 수입 단가가 달라졌다고 판매가를 조정할 수 있는 시장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차·기아는 해외 판매 비중이 늘면서 고환율로 인해 더 많은 이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1~11월 글로벌 판매량 가운데 미국 비중은 23.3%로 1988년 이후 처음으로 23%를 돌파했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약 2800억원, 기아는 약 2200억원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미국 정부가 관세를 부과하면 이 수치는 낮아질 전망이다.
이용상 기자(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