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국내 금융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적 혼란이 시장 불안을 높이고 있는 와중에 글로벌 불확실성까지 높아지게 돼서다.
특히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로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시장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비상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하며 ‘트럼프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7일 간부회의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장 변동성을 핵심 안건으로 논의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직후 주가와 환율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이른바 ‘트럼프 쇼크’가 있었던 만큼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시장을 과도하게 자극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의 주요 정책은 취임 첫날부터 구체화될 가능성이 큰데 이때 환율과 물가 등이 즉각적으로 상승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태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에만 ‘독재자’가 되겠다고 언급하는 등 취임과 동시에 정책 추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지난 14일에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취임 당일 외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관세를 징수할 대외수입청(ERS)을 신설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보편관세 부과, 각종 감세 등이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차치하더라도 미국 경제의 움직임이 국내 증시나 환율 등에 연동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 아래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주력 수출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된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까지 둔화될 땐 1%대 후반의 경제 성장 전망치도 담보하기 힘들 수 있다.
달러화 강세 증폭에 대한 걱정도 크다. 트럼프 당선과 국내 정치 이슈가 원/달러 환율을 자극하면서 환율은 1400원대 중후반으로 여전히 높은 상태다. 일각에선 현재 환율 수준이 트럼프 리스크를 반영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하는 등 긴축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원화 가치 절하가 심화될 여지는 남아 있다.
여기에 외국인 자본 이탈과 그에 따른 증시 하락, 유동성 악화, 소비자물가 상승 등도 우려되는 요소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지난해 12월 전월 대비 2.4% 상승했다. 수입물가는 10월(2.1%)부터 오르기 시작해 12월까지 3개월 연속 상승했다. 전년 동월대비로는 7.0%나 급등했다. 수입물가 증가는 소비자물가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당국도 트럼프 신정부 출범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7일 오전 일찍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불러모아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열고 “미국 신정부 출범 등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다”면서 “각 기관이 미국 신정부 정책과 국제금융시장 동향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금융·외환시장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금융당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정책변화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며 시장 불안감이 확산될 경우 필요한 안정 조치를 즉각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올해 1월 연 3.0%로 동결된 기준금리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 6명 모두 3개월 이내에 현재 연 3.00%보다 낮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장 고환율 불을 끄기 위해 금리를 동결했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국내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추가 달러 강세 여부는 지속 주시해야 할 변수다. 이달 28~29일(현지시간)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도 좌우될 수 있다. 예상보다 더 강한 매파적 발언이 나오면 달러 강세가 더 거세지고 우리나라의 금리 인하가 또다시 환율로 인해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해 내내 묶어둘 수 있단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은 뉴욕사무소는 ‘최근의 미국경제 상황과 평가’ 보고서에서 글로벌 투자은행(IB) 10곳 중 2곳이 미 연준의 올해 금리인하 횟수를 ‘0회’로 전망했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해 12월 연내 2회 인하를 예상했다가 올해 1월 들어 0회로 변경했다. 도이치뱅크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연내 동결 전망을 유지했다.
헤럴드경제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