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환전소에 1달러를 살 때 1535원이 필요하다는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이날 고시 환율은 달러당 1467.5원에 마감(오후 3시 30분 기준)했다. /연합뉴스
정국 불안으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500원 선에 근접하면서 한국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27일엔 장중 1487원까지 올랐다. 비상계엄 사태 이전 1402원이었던 환율은 정국 고비고비마다 상승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달러화 강세에 정국 불안까지 겹치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상승할 때 한국 증시만 외면받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계엄 후 원화 가치 -4.4%
27일 서울 외환 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67.5원에 마감(오후 3시 30분 기준)했다. 이날 환율은 오전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덕수 대행을 탄핵하겠다는 기자회견을 갖고,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탄핵 재고를 요청하는 입장을 발표한 뒤에 급등, 장중 1487원까지 올랐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국내 정치 상황만 최근의 환율 상승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장벽을 높이겠다고 예고한 데다, 미 연방준비제도가 내년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달러화는 유로·엔·위안 등 주요 국 통화를 상대로 ‘나 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원화 가치 하락엔 국내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1402원이었던 환율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1425원으로 뛰었다. 탄핵안 1차 표결이 무산된 후 첫 거래일에 1437원으로 상승했다. 잠시 숨죽이던 환율은 한 대행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1500원 선에 가까워졌다.
계엄 사태 이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총 4.4% 추락했다. 같은 기간 유로(-1%), 영국 파운드(-1.1%), 중국 위안(-0.2%), 대만 달러(-0.3%)의 낙폭보다 크다. 이 기간 엔화(-5.2%)만 우리보다 약세 폭이 컸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내년 1월 금리 인상에 대한 언급을 피해, 금리 인상이 멀어졌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행 사태가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헌법재판소 결정은 언제 날지, 수출 호조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따라 환율이 계속 요동칠 것”이라며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되는 뉴스가 많지 않아 우려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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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 나 홀로 하락
이날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02% 하락한 2404.77, 코스닥은 1.43% 떨어진 665.97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장중 2388.33까지 떨어지며 2400 선을 내주기도 했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가 코스피에서 각각 1730억원, 115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이날을 포함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총 3조4150억원을 순매도(판 것이 산 것보다 많음)했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돈을 빼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처럼 통화가치 약세를 겪고 있는 일본 증시의 상황은 다르다. 일본 대표 증시인 닛케이평균은 이날 전 거래일 대비 1.8% 상승한 4만0281.16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7월 말 4만 선이 무너진 이후 5개월여 만에 4만 선을 회복한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강달러로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수출 관련주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똑같은 달러 강세에 노출됐지만, 일본은 엔화 약세가 수출 기업 수혜라는 호재로 부각되는 반면, 한국의 원화 약세는 정치 리스크에 가려진 것이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코스피는 27일까지 3.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일본 닛케이(2.6%), 중국 상하이종합(0.6%), 홍콩 항셍(1.7%), 대만 가권(1.1%)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치 리스크가 투자 심리 위축과 원화 약세 압력 증폭, 외국인 매도 압박을 잇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김승현 기자 mykim01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