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단이 오는 20일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함께 참석하기로 논의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이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이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에 대응하기 위해 당내 방침으로 '외국 출장 전면금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취임식은 불참하지만 다음달 국회의장과 여야 특사단을 구성해 미국에 파견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 측 설명이다.
세계 각국 정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으로 발생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트럼프 당선인 측과의 네트워크 형성에 힘쓰고 있지만 한국은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대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트럼프 당선인 측과의 '아웃리치(Outreach·대외접촉)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회 외통위 야당 간사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5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외국 출장 전면금지라는 당 방침에 따라 외통위 방미단에 민주당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며 "(민주당은) 다음달 우원식 국회의장과 함께 여야 특사단을 구성해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절차 마무리 전까지 의원들의 해외 출장 금지를 결정했다. 하지만 김문수 민주당 의원이 관련 공지 후 미국 유학 중인 자녀를 만나기 위해 출국해 한덕수 전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했다. 이재명 대표는 곧바로 김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 회부를 지시했고 '해외 출장 금지령'은 더 공고해졌다.
이 방침으로 '의원 외교'도 멈출 위기에 놓였다. 국회 외통위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국민의힘 소속 김석기 외통위원장을 비롯해 여야 의원 5~6명 규모의 초당적 방미단 구성을 준비했다. 민주당도 외교 분야는 초당적 협력의 공감대가 있었지만 김 의원의 윤리심판원 회부 이후 불참을 확정했다고 한다.
이번에 야당이 참석하지 않으면 그간의 관례도 깨진다. 외통위는 2001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 취임식에 박명환 외통위원장과 여야 간사단이 참석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취임식과 2017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 취임식에는 각각 박진 외통위원장과 여야 간사단, 심재권 외통위원장과 여야 간사단이 참석한 바 있다. 다만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불참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 탄핵 정국의 빈틈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 네트워크까지 활용한다고 공언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라면서 "세계 각국 정상들은 트럼프 당선인 측과 만나 자국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대통령 취임식 참석 기회를 자진해서 거절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동맹국도 돈을 내야 지켜준다는 거래중심적 외교관 뿐 아니라 모든 수입품에 보편 관세 10%를 부과하는 자국 우선 경제·통상 정책을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관세 부과 등으로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직전 행정부 대비 절반 이하로 줄였고, 방위비 분담금 증액 레버리징(지렛대 활용)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냈다. 2기 행정부에서도 주한미군 축소 또는 한국을 패싱한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 등이 제기된다.
외통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야당이 불참해도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참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김석기 외통위원장은 "의원 외교란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당만이라도 참석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외통위 여당 간사이자 외교관 출신인 김건 국민의힘 의원도 참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 자체보다도 실질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현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수만명이 모여드는 만큼 참석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면서 "취임식을 계기로 트럼프 당선인 측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머니투데이 김인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