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의 고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가치투자의 전설로 불리는 워렌 버핏이 2년 넘게 현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와 관련해 그는 주주 서한을 통해 현금보다 주식 투자를 선호한다는 방침이 바뀐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이하 버크셔)는 연례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회사가 보험 사업 호조 등에 힘입어 영업이익이 474억4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7% 증가했다고 밝혔다. 3년 연속 최대치다. 투자 수익을 포함한 지난해 순이익은 890억달러(128조원)다.
눈길 끈 부분은 현금성 자산 보유액이다. 지난해 말 기준 버크셔는 단기 국채 등 현금성 자산이 3342억달러(480조7467억원)라고 밝혔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2023년 말에 비하면 거의 2배 늘어난 것이다. 분기별로 보면 10개 분기 연속 늘고 있다. 지난해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등 1430억 달러 규모 주식을 매각한 반면 신규 주식 투자액은 92억달러에 그쳤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미국 증시의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 매력은 떨어지고,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거래가 나오기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늘고 있는 버크셔의 현금 보유량은 투자자들의 주요 관심사다. 주식 고점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버핏은 주주 서한을 통해 일부의 비정상적 행보 지적을 반박하며 "나는 현금 자산을 우량 기업 투자보다 선호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버크셔 주주들은 우리의 자금이 주로 주식, 특히 미국 기업 주식에 투자될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며 "많은 기업이 해외에서도 중요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또 버핏은 버크셔의 상장사 투자 지분 가치가 1년 사이 3540억달러에서 2720억달러로 23% 정도 감소했지만, 비상장사 지분 가치는 늘어났다고도 했다. 다만 CNBC는 이날 버핏의 발언이 주식을 팔고 현금을 늘리는 데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해명 과정에서 그는 정부에 대한 조언도 남겼다. 버핏은 "재정 운용의 잘못이 만연하면 화폐의 가치가 증발할 수 있다"면서 일부 국가가 이런 과도한 재정 지출이 반복되는데 미국도 그런 수준에 가까워진 적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통화 가치 불안정에 대응하는 기술을 갖출 수 있으며, 이와 관련 자신은 주식 투자를 통해 미국 기업의 성공에 계속해서 의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버핏은 버크셔가 지난해 268억달러(38조5000억원)의 세금을 냈다면서 "엉클 샘(미국을 의인화해 표현한 상징적 캐릭터), 현명하게 지출해달라. 당신은 안정적인 통화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과, 그것을 위해 지혜와 경계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주식 투자업종과 관련해 버크셔는 일본의 주요 종합상사 5곳(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이토추상사, 스미토모상사, 마루베니상사) 지분율을 확대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버핏은 "장기적으로 버크셔의 일본 기업 지분이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향후 경영진도 수십 년간 이들 기업의 지분을 보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크셔는 2019년부터 일본 5대 종합상사에 투자해 총 138억 달러를 투입했다. 현재 해당 지분 가치는 235억 달러로 증가했다. 버핏은 서한에서 이들 일본 기업들이 기존 10%인 버크셔의 지분 한도를 다소 완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