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앞두고 ‘손 놓은’ 컨트롤타워 우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국내 리더십에 공백이 생겨버렸습니다. 사업에 매우 중요한 한·미 관계 관리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큰일이에요.”
국내 수출 대기업의 한 임원이 4일 이같이 토로했다.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기업 등 경제·산업계도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수출·내수 악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이 부른 정국 혼란까지 겹치며 사업 불확실성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국외 거래처 안심시키기에 나서는 등 자체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날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전세계 주요 거래처를 대상으로 국내 상황을 설명하고, 오전에 경영진 회의를 열어 사업 영향 등을 점검했다. 4대 그룹 한 임원은 “글로벌 거래처들이 외신 기사를 보고 한국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우려할 수 있어 동요하지 않도록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SK)그룹도 이날 오전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부회장) 주재로 경영진 회의를 열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상황 전개와 시장 영향 등을 살폈다. 엘지(LG)그룹과 현대차그룹 등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큰 환율 상황과 대외 신인도 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권오갑 에이치디(HD)현대 회장은 이날 긴급 사장단 회의에서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거로 예상되니 비상 경영 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갖고 환율 등 재무 위험을 집중 점검해달라”고 주문했다.
환율·금리 변동성 확대, 외국인 투자 심리 악화 등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특히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건, 내년 1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무역·통상 정책의 컨트롤타워 부재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100일 이내 관세 인상, 보조금 축소 정책 등을 밀어붙일 때 국민의 신망을 잃은 상태가 지속하는 것은 한국이 속수무책으로 협상력을 잃는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수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정국 불안이 오래갈수록 기업 입장에선 좋을 게 없다. 대통령 탄핵 소추, 직무 정지 여부 등이 빨리 정리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재계 단체 임원도 “기업은 돈이 있어야 사업을 할 텐데 당장 국회의 내년 예산안 국회 심의마저 올 스톱될 판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기업의 일상 업무도 일부 차질을 빚었다. 서울 여의도에 본사를 둔 엘지전자와 엘지화학은 이날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했다. 넥슨은 직원들에게 국내·외 출장을 자제하고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경우 휴가를 사용하도록 권유했다.
신한·우리·하나·케이비(KB)국민·엔에이치(NH)농협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도 이날 오전 일제히 회장 주재 긴급 임원 회의를 통해 환율 등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직원들에게 “현금 수요가 평소보다 많을 수 있으니 영업점별 시재 유동성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장 불안에 따른 영업점의 예금 인출 가능성 등에도 대비하라는 취지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