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사, 계엄 여파 분석
“외국인 투자자 이탈·대외 신인도 하락
韓 자산 거래 리스크 프리미엄 높아져”
국가신용 반영 국고채 금리 일제히 상승
전문가들 실물경제 침체 이어질라 우려
경제·금융당국, 24시간 비상체계 가동
“시장 변동성 커… 유동성 무제한 공급”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해제까지 불과 6시간이 걸렸지만, 경제에 미칠 파장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비상계엄이 신속히 해제되면서 환율과 증시 등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지만, 야당이 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덮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한 탓이다. 내수 부진, 수출 둔화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발(發) 관세 충격으로 우리 경제가 1%대 저성장 터널 앞에 서 있는 가운데 정치권 불안정까지 더해져 외국인투자자의 이탈과 대외 신인도 하락은 중장기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무디스 “정치적 갈등 장기화 한국에 부정적”
당장 블룸버그통신은 금융권을 중심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계엄 사태에 따른 혼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강화할 명분을 줬다고 진단했다.
그래스호퍼 자산운용의 대니얼 탄은 “한국 관련 자산과 주식·통화·채권을 거래하는 데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웃돈)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계엄 사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강화하는 주요한 부정 요인으로 추가됐다는 분석이다.
세계 3대 글로벌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무디스도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하면 결국 한국의 신용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짚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킴엥 탄 전무는 이날 국내 언론 대상 세미나에서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됐고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물론 이는 투자자들에게 뜻밖의 일이고 향후 투자자 결정에 부정적 여파를 미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한국의 현 신용등급(장기 기준 ‘AA’)을 바꿀 사유가 없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국가 신인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전날 소폭 반등했다가 안정세를 찾았다. CDS 프리미엄은 우리나라가 발행한 채권 등에 대해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데, 5년물은 전날 오전 32bp(1bp=0.01%포인트) 수준을 보이다가 계엄 발표 직후 36bp까지 올라섰으나 이날 들어선 34bp 수준으로 낮아졌다.
국가 신용이 반영되는 국고채 금리는 비상계엄 여파로 일제히 상승했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4.1bp 오른 연 2.626%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도 각각 3.4bp, 5.2bp가 상승했다. 국채 금리 상승은 회사채, 금융채 등의 금리에도 반영돼 기업의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만큼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전문가들은 외환·금융시장의 단기 충격은 제한적이더라도 향후 대통령 탄핵 추진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대외 신인도 하락은 물론이고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국가 신인도가 하락해 (외국인) 자본이 유출되고, 그로 인해 환율 상승,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실물경제까지 침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획재정부 제공◆24시간 TF·무제한 유동성 등 안정화 총력
경제·금융당국은 이날 주요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대책회의를 열고 24시간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는 등 시장 안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7시에도 정부서울청사에서 머리를 맞댔다.
최 부총리는 회의 후 브리핑에서 “국제 신용평가사, 미국 등 주요국 경제 라인, 국내 경제단체, 금융시장과 긴밀히 소통하고 신속하게 상황을 공유하겠다”며 “실물경제 충격이 발생하지 않도록 24시간 경제금융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당국은 시장 변동성이 언제든 커질 수 있는 만큼 당분간 주식·채권·단기자금·외화자금 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후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비상계엄 사태에도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김수미·박미영·서필웅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