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히 CEO "반도체 생산 확대, 회사 손실만 키워"…
"정부 보조금을 위한 추가 투자 불필요하다고 판단"
/사진=블룸버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025년 1월 정권 교체를 앞두고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원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공장 폐쇄 등 경영난을 이유로 보조금 수령을 거부하는 업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반도체업체 마이크로칩의 스티브 상히 CEO(최고경영자)는 이날 UBS 콘퍼런스에서 반도체 지원법 관련 바이든 행정부와의 보조금 지급 협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기업이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지급 절차 과정을 멈춘 것은 마이크로칩이 처음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마이크로칩은 당초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1억6200만달러(약 2291억976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오리건과 콜로라도 공장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경영난 지속으로 오리건주 공장에서는 2차례에 걸친 근로자 강제 무급 휴직에 돌입했고, 2일에는 애리조나주 공장 폐쇄를 발표해 보조금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블룸버그는 "마이크로칩은 심각한 매출 부진에 빠진 기업으로 올해 매출이 4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가도 올해 들어 27% 하락해 필라델피아 증권거래소 반도체 지수에서 최악의 성과를 기록한 기업 중 하나"라고 짚었다.
상히 CEO는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이 보조금은 약 1년 전 모두가 (반도체) 공장 (생산) 용량이 절대 충분하지 않고, 전 세계가 영원히 실리콘 팹을 건설할 것으로 생각했을 때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너무 많은 (반도체 생산)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반도체 시장의 수급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정부로부터 1500만달러를 받기 위해 1억달러를 쓸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공급과잉 속 공장 가동은 회사 손실만 키우고, 정부 보조금이 전체 공장 비용의 일부만 지원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3일(현지시간) 기준 올해 마이크로칩 주가 추이 /사진=블룸버그
블룸버그는 "마이크로칩이 보조금 협상을 중단하고, 애리조나 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은 반도체산업의 순환적 특성을 보여준다"며 "반도체 부문의 호황과 불황은 미래의 투자와 보조금을 형상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절차를 담당하는 미 상무부의 대변인은 "마이크로칩과 소통을 하고 있으며, 장기 계획에 대해서도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마이크로칩의 이번 결정으로 임기 내 보조금 지급을 마무리하려던 바이든 행정부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며 앞서 마이크로칩에 할당됐던 보조금의 재배당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 마이크로칩의 이번 보조금 거부가 미 행정부와 아직 최종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보조금 지급에도 영향을 줄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편 2022년 제정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공장 설립 등 반도체 생산 보조금 390억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달러 등 5년간 527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무부는 앞서 해당 법을 통해 인텔,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20개 이상 기업과 보조금 지급 예비 계약을 체결했고, 최근 인텔과 TSMC 등 6개 업체와 최종 합의를 마무리했다.
정혜인 기자 (chimt@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