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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성장 땐 직장인들 평생 1억 저축도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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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1%’ 쇼크] [5] 김세직 서울대 교수 인터뷰

2일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만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난 지금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장기 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7%, 이회창 후보는 6% 성장을 공약했다. 다음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747 공약(연 7% 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 강국)을 내세웠다. 이들의 임기 때 연평균 성장률 6~7%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당시엔 목표치라도 있었다. 이후 한국 경제 상황은 확연히 달라졌다. 한국은행은 내년과 내후년 1%대 성장을 전망한다. 일본식 ‘제로 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수년 내 0%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2일 만나 ‘제로(0) 성장’의 의미부터 물었다.


그래픽=이진영


­-경제성장이 멎은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한국 근로소득자 연평균 소득이 4200만원이다. 성장이 멎으면 이 연평균 소득이 일생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되게 된다. 취직해서 은퇴할 때까지 25년 정도 직장 다닌다고 할 때, 평생 일해 10억원 조금 넘게 번다는 것이다. 평균 저축률이 10% 정도니까, 평생 소득 10억원 중 1억원을 모을 수 있고, 맞벌이면 2억원 정도밖에 못 모은다는 얘기다. 요즘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원이다. 평생 1억~2억원 저축으로 감당이 되겠는가. 전세도 못 얻는 돈인데.”


-국가 전체적으로는 어떤가.


“정부 개입이 없다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역(逆)성장이 2년에 한 번꼴로 일어날 수 있다. 제로 성장은 경제활동의 ‘빙하기’다.”


김세직 교수는 2016년 논문에서 “1990년대 중후반부터 거의 20년 걸쳐 한국경제 장기 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 성장률은 해당 연도와 앞뒤 5년씩 총 11년치 연간성장률을 산술 평균한 것으로 단기 요인에 영향받지 않는 그 나라의 ‘진짜 경제 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김영삼 정부 때 6%대이던 장기성장률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까지 5→4→3%대로 5년마다 1%포인트씩 규칙적으로 내려앉았고, 박근혜와 문재인 정부 때는 2%대로 진입했다.


-최근 장기 성장률은 2% 안팎이다.


“2014년에 서울 4억원짜리 집이 2021년 10억원이 될 정도로 부동산 중심 부양책을 썼다. 또 삼성전자 반도체가 생각보다 잘 팔려 무역수지가 좋아졌다. 이 두 가지 큰 요인 때문에 추세선보다 성장률이 높았다. 일종의 착시로, 근본적인 추세가 바뀐 것은 아니다.”


-왜 추세적으로 떨어지나.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한국의 경우 인적 자본 문제가 크다. 1960~80년대에는 한국의 모방형 인적 자본이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물건을 잘 베껴서 수출하면 성장했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 선진국 기술 격차가 20년 안으로 좁혀졌다. 선진국 기술은 대개 20년 특허로 보호되는데, 기술 격차가 20년 안으로 좁혀졌으니 더 이상 베낄 기술이 마땅치 않게 된 것이다. 한국이 그 후 더 성장하려면 모방형이 아닌 창조적 인적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


-이러다가 ‘일본화’가 아닌 ‘남미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지기 전까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었고, 대외 자산도 많았다. 한국이 침체에 빠지면 일본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남미의 1인당 GDP가 한국의 3분의 1임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 남미화 우려는 시기상조다.”


-전통적인 부양책은 효과가 없나.


“과잉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일본이 침체 전과 초입이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를 생각해 보자. 경기 부양을 반복했고, 한계 기업에 구제금융을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정상 기업보다 좀비 기업들에 더 많은 금융 자원이 배분됐다. 과잉투자로 잠시 성장률을 높일 수 있지만, 결국 그게 부실 투자로 판명 나면서 실물 부문에 위기가 생기고 금융 부문으로 전이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쉬운가.


“어려우니까 더 해야 한다. IMF 외환 위기 때 우리도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나 은행은 퇴출시켰다. 그런데 일회성에 그쳤다. 2년 정도 지나자 정책 기조가 경기 부양 쪽으로 옮겨갔다. 근본적인 구조 개혁 드라이브가 더 이상 없었다. 당시에도 경기 부양은 잘못된 진단에 잘못된 처방이었다.”


-미국이 나 홀로 호황을 이어가는 까닭은.


“미국은 지난 150년간 3% 수준의 장기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끊임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전등 만든 토머스 에디슨, 전화 만든 그레이엄 벨, 자동차 대량생산에 성공한 헨리 포드로 이어졌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 나서도 일론 머스크가 나오지 않았나.”


-천재가 성장을 만드는 건가.


“사회 전체적으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면 평범한 국민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고속도로를 나갈 때 볼 수 있는 분홍 유도선을 처음 아이디어 낸 사람이 도로공사 윤석덕씨라고 한다. 그럼 그 유도선에 ‘윤석덕 라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정한 재산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아서 한 번 생각해 내기는 어렵지만, 베끼기는 쉽기 때문이다.”


-정치권 역할도 중요한 것 같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가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이를 해결하려 해야 한다. 미국은 국가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 문제의 핵심이 뭔지를 가린 다음, 그에 맞춘 대책을 세운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그 문제에 관해 토론한다. 그래서 미국은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행정부 때 제조업 부흥과 중국 견제책을 지속해 올 수 있었다.”


-성장률이 반등하기엔 시간이 너무 안 남은 것 아닌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제로 성장으로 떨어지는 데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 있다면, 그 기간 사회 전반적인 창의성 확대로 저성장을 저지할 수 있다. 서둘러야 한다.”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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