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과 협력 발표 전 사임 공지
한국이 24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을 수주한 이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주도해 온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패트릭 프래그먼(Patrick Fragman) CEO(최고경영자)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사임하기로 했다. 프랑스 원전 기업 알스톰 출신인 그는 한국의 원전 수주에 강력하게 반발해 와 이번 체코 수주전에서도 마지막 걸림돌이란 평가까지 받았는데, 이번에 옷을 벗는 것이다. 세계 원전 시장 공략을 위한 한·미 양국 정부 및 기업 간 협력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오는 3월로 예정된 체코 원전 본계약도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수원과 합의안 발표 앞두고 CEO 사임
웨스팅하우스는 9일(현지 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프래그먼 CEO가 오는 3월 말을 끝으로 사임한다”고 공지했다. 2019년 8월 취임한 프래그먼 CEO는 2023년 재선임돼 올 8월까지가 임기지만, 5개월 앞서 물러나는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전날 ‘한·미 원자력 수출·협력 약정’에 공식 서명하고,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도 2년여 이어진 지식재산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프래그먼 CEO가 경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원전 상용화에 성공한 웨스팅하우스는 1969년부터 우리나라 첫 원전인 고리 1호기 사업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국내 다수 원전 건설에 참여해 왔다. 특히 원자로 관련 원천 기술을 갖고 있어, 우리가 이른바 ‘한국형 원전’ 개발에 성공한 이후에도 지식재산권 관련 분쟁을 이어온 기업이기도 하다. 특히 2019년 프래그먼 CEO가 선임된 뒤로 한국에 대한 견제가 더욱 강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픽=양진경
프래그먼 CEO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다 AI(인공지능)의 급성장으로 전기 부족 현상이 세계적으로 벌어지자 공세를 강화했다. 2022년 10월에는 한수원의 ‘한국형 원전’이 자사 원천 기술을 침해했다며 소송에 앞장섰다. 체코 신규 원전 최초 입찰을 한 달 앞둔 때였다. 2023년 9월 미 법원에서 이 소송은 각하됐지만, 웨스팅하우스는 다음 달 곧바로 항소했다. 지난해 7월 한수원이 체코 신규 원전 수주전에서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EDF(프랑스전력공사)를 제치고 수주에 성공했을 땐, 체코 당국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잘못됐다”는 이의 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프래그먼 CEO가 프랑스 출신으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전에서 ‘팀 코리아’에 역전패한 프랑스 측 알스톰의 주요 경영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프래그먼 CEO가 15년 전에 이어 또다시 K원전에 밀리자 몽니를 부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해진 예산과 공기를 맞추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경쟁력이 강한 한국과 원천 기술 및 외교력이 강한 미국이 세계 원전 시장을 함께 공략하는 지금, 양측 모두에 프래그먼 CEO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체코 장관도 “긍정적”
그동안 한수원의 발목을 잡아온 웨스팅하우스와 얽힌 분쟁이 말끔히 해결되면서 3월로 예정된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계약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체코 양측은 지난해 7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체코에서 열린 착수 회의를 시작으로 체코와 한국을 오가며 계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에도 체코에서 5차 협상이 예정됐고, 앞서 지난해 11월엔 CEZ(체코전력공사) 임원 등 체코 방문단이 울산 새울 원전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공장을 찾기도 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한·미 양국 정부가 체코를 비롯해 급성장하는 해외 원전 시장에 공동으로 진출하기 위한 ‘원자력 수출·협력 MOU’를 맺자 체코 정부에서도 계약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루카스 블체크 체코 산업통상부 장관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한국과 미국 정부 간 합의를 환영한다. 특히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프로젝트에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블체크 장관은 앞서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한·미 정부 간 MOU에 이어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에도 협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유럽은 미국이, 중동 등은 한국이 원전 수출을 주도하고,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의 건설사, 기자재 업체들과 협력하는 내용의 협력 방안이 조만간 발표를 앞두고 있다.
조재희 기자 joyjay@chosun.com
조재현 기자 jb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