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엔진’ 기업 신음
국내 대기업 10곳 중 3곳은 올해 자금 사정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5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도 5년만에 가장 높아졌다.
박경민 기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한 매출액 1000대 기업(100곳 응답)의 자금 사정 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올해 자금 사정이 악화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31%였다. 사정이 호전됐다는 응답(11%)의 3배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건설·토목 기업(50%), 금속(철강 등, 45.5%), 석유화학(33.3%) 순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고 답한 비중이 높았다. 한경협은 해당 업종들이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와 중국발 공급과잉 영향으로 장기 부진을 겪고 있어 자금 조달에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은 자금 사정에 부담을 주는 원인으로는 환율 상승(24.3%)이 가장 많이 꼽았다. 원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23%), 높은 차입 금리(17.7%)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박경민 기자
또 이번 조사에선 기업 5곳 중 1곳(20%)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해다. 이는 지난달 2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0%에서 2.75%로 0.25%포인트 내렸지만, 여전히 기업 부담이 큰 상황으로 풀이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금리 인하에도 건설, 철강, 석유화학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자금난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환율 변동성을 축소해 기업들의 외환 리스크를 완화해주고, 정책금융·임시투자세액공제 확대 등의 금융·세제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인정 범위가 확대된 점도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이날 발표한 ‘2025년 기업규제 전망조사’에 따르면 국내 50인 이상 기업(508곳 응답)의 38.4%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임금 부담’을 가장 큰 부담 요인이라고 답했다.
박경민 기자
경제위기 우려도 컸다. 올해 한국이 경제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질문에는 응답 기업의 96.9%가 ‘그렇다’고 예측했으며, 1997년 IMF 위기 때보다 심각할 것으로 전망한 응답 비율도 22.8%에 달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발표한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의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365.14를 기록했다. 10년 전(107.76) 대비 3.4배 수준으로 높아졌고, 한일 무역 분쟁이 격화했던 2019년 12월(538.2) 이후 60개월 만의 최고치다. 당시엔 일본이 한국을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 목록(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이 타격을 입었다.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스콧 베이커·니콜라스 블룸·스티븐 데이비스 교수 등 석학 3명이 공동 개발한 지표로 국가별 주요 언론 기사에서 ‘경제’ ‘정책’ ‘불확실성’ 관련 단어 빈도를 집계해 계산한다.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가 10포인트 증가하면 약 6개월 뒤 국내 설비투자가 8.7% 감소하는 상관관계를 보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 설비투자 지수(잠정치)는 102.7로 지난해 12월(119.7) 대비 14.2% 감소했다.
박양수 SGI 원장은 “예기치 못한 불확실성이 닥쳤을 때는 정부가 기업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투자세액공제 확대, 환율 변동보험·보증제도 확대 등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노유림 기자 noh.yu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