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재 “4100억달러 밑돌진 않아”
발언 두달 만에 4092억달러로…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 확대 영향
관세 전쟁으로 환율 변동성 커져
4000억달러마저 위태로울 수도
지난달 외환보유액이 4100억 달러 밑으로 떨어지며 4년 9개월 만에 가장 적은 수준까지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12월 “외환보유액이 4100억 달러 아래로 내려갈 정도는 아니다”라고 자신했는데 두 달 만에 이 총재가 제시한 ‘선’을 밑돌게 된 것이다.
한은은 원-달러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과 체결한 외환 스와프(교환)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금융시장에서는 이번 주부터 본격화된 미국발(發) 관세 전쟁이 상반기(1∼6월) 내내 환율 변동성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4000억 달러도 곧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외환보유액 한 달 만에 18억 달러 감소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4092억1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18억 달러 줄어들었다. 이는 2020년 5월(4073억1100만 달러)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저치다. 작년 12월 말 외환보유액은 한 달 전 대비 12억 달러 증가한 4156억 달러였다. 하지만 올 1월(46억 달러 감소)에 이어 지난달까지 두 달 내리 감소했다.
한은은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규모가 확대된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외환당국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늘렸다. 외환 스와프란 국민연금이 해외 자산 매입에 필요한 미국 달러를 시장이 아닌 외환보유액에서 빌린 뒤 나중에 되갚는 방식이다. 금융시장의 달러 수요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빌린 만큼 외환보유액이 일시적으로 줄어든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달 중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다른 통화 외화 자산의 달러 환산액은 증가했다”며 “하지만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규모 확대로 인해 외환보유액이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 “美 관세정책으로 환율 변동성 더 커질 것”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외환 시장에 변수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미국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인해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 보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에 의해 원-달러 환율이 또다시 급등하면 외환당국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활용해야 할 수도 있다.
그동안 금융시장에서 외환보유액의 심리적인 저항선은 4000억 달러 수준으로 여겨져 왔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시장 참여자들과 정부 당국자들이 체득한 수치였다.
4100억 달러가 깨진 데 이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4000억’ 달러 선을 지킬 수 있을지 여부를 두고 불안감이 새어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국인의 대(對)한국 투자를 늘리고,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대신 국내 증시로 돌아올 유인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주식시장 경쟁력을 높일 만한 대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