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를 바라보는 미국인, 더 나아가 전세계 금융시장의 시각은 바로 이 말로 요약된다. 재선에 실패했던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서 집권에 성공하는 사건 자체가 132년 만의 기현상이다. 여기에 이번 대선은 개표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는 초박빙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개표 초반에 결과가 확정돼버린 압승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일찌감치 트럼프의 재선을 예측해낸 거의 유일한 곳이 있다. 베팅 사이트다. 암호화폐를 활용해 갖가지 이슈를 예측해내는 폴리마켓(Polymarket)은 꽤 이른 시점부터 트럼프 당선에 무게를 싣고 있었다.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가 활발하게 일어났던 원인도 여기에 있다.
폴리마켓보다 한국 언론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은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되길 바라는 듯했던 일부 언론들의 보도 이후 또 다시 '예상 밖의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트럼프 재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경제 지표는 달러 환율이다. 지난 4월 이후 처음으로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를 돌파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신승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이날 국제수지 통계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이 가격 경쟁력에서 품질 경쟁력으로 많이 전환된만큼 환율이 높아져도 우리 수출 증가에 기여하는 것은 크지 않다"면서 "환율이 수입 물가를 통해 국내 소비자물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한은 조사국이 더 면밀히 살펴보고 수정 전망에 반영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달러 환율 급상승은 증시 전반에도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간밤 미국 증시에서는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전장보다 3.57% 급등하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2.53%, 2.95%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랠리가 펼쳐졌다. 통상 이 정도 급등장은 한국 증시에도 좋은 영향을 줘야 하지만 오늘은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45분 현재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0.20% 상승, 코스닥은 0.90% 하락에 그치고 있다. 코스피의 경우 하락세로 개장했으나 개인과 외국인들이 현물 시장에서 순매수세를 나타내면서 장중 상승 전환에 가까스로 성공했을 뿐 오름폭은 크지 않은 모습이다.
미국 증시가 급등했을지언정 결코 웃을 수 없는 시장도 있다. 채권 시장이다.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한 것은 물론 공화당이 상·하원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커지자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간밤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4.43% 수준까지 급등하며 위기감을 조성했다.
현재 대선 분위기에 휩쓸려 이 부분이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높은 국채금리는 결국 작년 3월 실리콘밸리뱅크(SVB) 사태 같은 위기를 재소환할 수 있다. 이 경우 경기침체 가능성이 재부각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이미 체력이 약해져있는 한국 금융시장에는 결정적인 타격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당분간 한국의 경제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불확실성이라는 파고를 견뎌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한국의 경제 좌표를 일본보다는 중국에 가깝게 배치하는 양상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겨울은 전에 없이 혹독해질 수도 있다. 한동안 대선 '허니문'으로 설렐 미국 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저 달가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미국 대선 결과와 관련해 "양국간 경제협력 관계가 단단한 바위처럼 유지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하겠다"면서도 "과도한 시장변동성에 대해서는 단계별 대응계획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미디어펜 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