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1000억원 K중소 뷰티 ‘마녀공장’ 유근직 대표 인터뷰
2012년 3월 당시 36살이었던 황관익·김현수 두 사람이 단돈 5000만원을 들고 화장품 회사 ‘마녀공장’을 차렸다. 서울 흑석동 반지하 33㎡(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였다. 정확히 10년 후 이 회사의 연간 매출은 1000억원을 넘었다. 이 중 절반이 해외 매출이다. 대표 제품인 클렌징 오일은 미국 최대 이커머스 아마존에서 클렌징 제품 부문 베스트셀러 ‘톱10′에 올랐다. 에스티로더·클리니크·엘레미스 같은 해외 회사 제품보다 더 잘 팔린다.
유근직 마녀공장 대표가 지난달 21일 서울 등촌동 본사에서 클렌징 오일과 세럼 같은 자사의 인기 제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녀공장 제품들은 미국 최대 이커머스 아마존에 베스트셀러로 팔려 나간다. 2022년 매출 1000억원을 달성, 작년까지 3년 연속 매출 1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박성원 기자
최근엔 미국 코스트코 매장 300곳에 제품을 입점시켰고, ‘미국의 올리브영’으로 불리는 화장품 멀티숍 ‘울타’의 온·오프라인 600개 매장에서도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 온라인 몰 큐텐과 라쿠텐의 화장품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작년엔 클렌징 오일 누적 판매 1600만개를 넘겼다. 지난해엔 한국무역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3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지금도 전체 직원 수가 93명인 ‘K중소 화장품 회사’가 낸 성과다.
작년 우리나라 화장품은 수출 100억달러(약14조4820억원)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마녀공장’ 외에도 ‘조선미녀’ ‘스킨천사’ ‘라운드랩’ 같은 K중소기업 제품들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각광받은 덕분이다. 비결이 대체 뭘까. 최근 ‘K 중소 뷰티’의 대표 주자인 ‘마녀공장’의 유근직 대표를 만나 물었다. 유 대표는 스킨푸드, 더페이스샵, 잇츠스킨, 네오팜 등을 거치며 33년간 화장품 업계에 몸담아 왔다. 그는 “까다롭고 적극적인 한국 소비자가 곧 우리의 경쟁력이 됐다”며 “한국의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뛰다 보니 글로벌에서도 인정받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K드라마로 떴고, K소비자 덕에 도약했다”
유 대표는 먼저 우리나라 드라마를 비롯한 K콘텐츠가 한국의 작은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토대를 닦아줬다고 평가했다. 마녀공장의 경우엔 2019년 현빈·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해 방영되면서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극중 손예진이 쓰던 화장품이 마녀공장 제품이었다. 해당 드라마는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높아, 마녀공장은 2020년 한 해에만 온라인 판매를 기반으로 일본에서 113억원 매출을 거뒀다.
K드라마를 즐겨 보는 해외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후기도 글로벌 진출에 큰 도움을 줬다. 트위터·틱톡·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싸고 제품력이 월등하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유 대표는 “가령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마스크팩 제품은 미국에서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았고, 서양인들은 끔찍한(terrible) 물건이라고까지 했지만, 이후 한국 드라마에서 마스크팩을 쓰는 모습이 나오자 수출에도 날개를 달게 됐다”고 했다.
한 번 떴다고 계속 잘되긴 쉽지 않다. 유 대표는 “우리에겐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까다로운 ‘K소비자’라는 무기가 있다”고 했다.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금세 도태되니, 우리는 남다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한국 소비자들은 소셜미디어나 제품 후기에 ‘제형을 부드럽게 해달라’ ‘향이 이상하다’ ‘더 순하게 만들어달라’ 같은 요구를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이들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코스맥스, 한국콜마처럼 기술력 좋은 OEM·ODM 업체는 제품 개발로 상품을 계속 업그레이드한다. 마녀공장은 주요 제품은 OEM·ODM 등 외주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유 대표는 “우리 본사는 총 12층인데, 이 중 상품개발팀이 한 층을 다 쓴다. 이들이 클렌징 오일의 제형, 성분, 향 등을 계속 고민해 외주 제조 업체에 상세하게 요구하고, 제조 업체는 이를 반영해 상품을 완성한다”고 했다.
“똑똑한 제품 하나면 이긴다”
유통 채널의 변화도 ‘K중소 뷰티’를 키웠다. 온라인이 강화되면서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똑똑한 제품 하나’를 발굴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중소기업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유 대표는 “1990년대만 해도 소위 화장품 대기업 몇 곳이 아니면 시장에 발을 들이기가 어려웠다. 당시 소비자들은 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기초부터 색조까지 모든 라인을 구매해서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잘 만든 제품 하나로도 플랫폼과 마케팅을 거쳐 각광받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유 대표는 “앞으로는 ‘K뷰티’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그 제품력 하나로 전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코스트코, 울타, 로프트 등 해외 오프라인 매장에 더 적극적으로 진출해 판로를 넓혀 나가겠다”고 했다.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