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족쇄 푼 이재용…산업·법조 "檢, 무리한 상고 안돼"
사법리스크에 잃어버린 8년
리더십 공백, 기업경영 발목
2017년 이후 대형 M&A 실종
"삼성 경쟁력이 국가 경제력"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5.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 합병' 등 혐의 사건 관련 2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으며 검찰이 무리한 상고를 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이 낮고, 삼성 '경영 공백'이 더 길어지면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이 사건 수사를 주도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심 선고 관련 사과 입장을 밝혔는데 이를 두고 재계에선 이 원장조차 사실상 '무리한 기소'를 인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이 이 회장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는 시한은 오는 10일이다. 형사소송법상 상고는 항소심 선고일(이 회장 사건 2월 3일)로부터 7일 내 해야 한다.
상고 여부를 두고 검찰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검찰은 1심 때에는 선고 사흘 만인 지난해 2월 8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2심 선고 후 사흘째인 6일까지도 검찰은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산업·법조계에선 검찰이 기계적인 상고를 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실익이 없다는 평가다. 법원이 1·2심에서 19개 혐의 전부를 무죄로 판단해 사실 관계는 더 다툴 여지가 없고, 대법원 상고심 자체도 법리적 문제를 따지는 '법률심'이라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애초에 기소가 무리였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수사 당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를 권고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였던 이복현 원장이 이 회장 기소를 강행했다. 이 원장은 이날 "결과적으로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이 원장이 무리한 기소를 인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원장 전체 발언을 볼 때 나름대로 삼성에도 사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소가 신중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삼성이 오랫동안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이영환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첫 공식 행보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동시에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왼쪽부터 카카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와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3자 회동에 참석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2025.02.04. photo@newsis.com /사진=박주성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리더십 공백이 더 길어져 삼성, 나아가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선 삼성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2심 선고를 끝으로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해야 한단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는데 이날 이 원장도 "이번을 계기로 삼성이 새롭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발판이 돼서 우리 국민 경제에 기여하기를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2018년 증권선물위원회 고발로 시작돼 7년 가까이 계속됐다. 이 회장이 국정 농단 사건으로 2017년 2월 구속된 것까지 고려하면 8년간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묶인 셈이다. 그동안 삼성은 2017년 하만 인수를 제외하고 '빅딜' 수준의 대형 M&A(인수합병)를 성사하지 못했다. 반도체에선 HBM(고대역폭메모리) 사업이 SK하이닉스에 뒤처지는 등 경영 공백에 따른 어려움이 가중됐다. 사법 리스크가 계속되면 최근 삼성전자가 오픈AI·소프트뱅크와 논의를 시작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떤 그룹이든 총수 사법 리스크가 있으면 내부 자원이 거기에 쏠릴 수밖에 없다"며 "해외 사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직접 챙겨야 할 사업이 많을 텐데 수시로 법정에 불려 나가고 법률대리인과 상의하느라 시간 소모가 많고 심리적 위축도 컸을 것"이라며 "삼성의 역할·규모를 고려할 때 검찰의 상고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과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상고를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검찰은 1000쪽이 넘는 항고 이유서로 (이 회장을) 꼭 감옥에 보내려 했지만 (저는) 우리 경제를 위해서 신속하고 공정한 사법부 판결을 촉구했다"며 "검찰도 신중한 판단으로 상고를 재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검찰의 무리한 상고를 피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1·2심 무죄 선고로) 더 이상 들여다볼 여지가 없고 기업·국가 차원에서 볼 때도 상고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검찰 입장에선 일각에서 제기될 '삼성 봐주기' 목소리를 우려해 상고를 검토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도록 야당이 목소리를 더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선일 기자 (jjsy83@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