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百 일산점·현대百 ‘디큐브’
경영 악화 등으로 올해 폐점 예정
다음 달 경기도 고양의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이 문을 닫는다. 1996년 개점 후 28년 만이다. 한때 일산 신도시 중심에서 지역 주민들의 인기를 끌었지만, 매출 부진으로 운영을 종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6월엔 서울 구로구에 있는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도 폐점한다. 빅3 백화점인 현대백화점이 서울 점포의 문을 닫는 것은 처음이다. 현대백화점은 건물 소유주인 자산운용사와 임차 계약을 맺고 점포를 운영했는데,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작년 롯데백화점 마산점, NC백화점 서면점 등이 폐점한 데 이어 백화점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이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 쇼핑의 일반화와 함께 오프라인에선 복합 쇼핑몰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쇼핑 문화의 변화 때문이다. 장기간 ‘유통업의 제왕’으로 불렸던 백화점의 입지가 좁아지며 아예 문을 닫는 점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좋은 입지를 선점해 백화점을 세우면 돈을 쓸어 담던 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게다가 백화점 업계에서도 극심한 양극화로 지방이나 중소 점포는 겨우 숨통만 이어가는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매출 상위 12개 점포의 매출이 국내 전체 백화점 매출의 50%를 넘을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문을 닫고 싶어도 고용 문제와 지자체와의 협의에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점포가 수두룩하다”면서 “폐점을 적기에 할 수 있는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란 말도 나온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문 닫거나 간판 바꿔 달거나
작년 문을 닫은 롯데백화점 마산점은 5대 백화점(롯데,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AK) 점포 가운데 매출 최하위였다. 그랜드백화점 일산점 역시 매출 부진으로 영업 종료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부산 센텀시티점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롯데백화점은 10여 개 매출 부진 점포에 대해 점포 효율화를 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이 사라지고 있는 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대표 백화점 브랜드 메이시스(Macy’s)는 지난달 11일 3분기 콘퍼런스 콜을 통해 2025년 2월까지 65개 점포의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작년 초 50개의 점포를 닫겠다고 발표했는데, 폐점하겠다는 매장이 15개 늘어났다. 일본백화점협회에 따르면 2010년 261개였던 일본의 백화점은 현재 171개로 줄었다.
백화점의 몰락을 두고 쇼핑 문화의 변화를 꼽는 사람이 많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의 공습에 직격탄을 맞은 게 가장 큰 이유”라며 “가만히 있으면 찾아왔던 손님들이 이제는 백화점 대신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한 복합쇼핑몰을 찾으면서 백화점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고 말했다.
실적이 부진한 점포를 무작정 닫을 수 없는 것도 백화점 업계의 고민이다. 국내 대형 백화점 관계자는 “경영진 입장에서는 장사 안 되는 점포를 닫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고용된 직원들의 문제도 있고 여기에 더해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줘 지자체와 정치인들의 반대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각 백화점이 팀을 꾸려 점포 효율화 전략을 짜내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백화점들이 폐점과 함께 찾아낸 자구책은 ‘간판 바꿔 달기’다. 백화점 간판을 떼고 소비자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재단장하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은 작년 8월 ‘신세계 사우스시티’로 재탄생했다. 현대백화점도 작년 9월 부산점을 새단장하며 ‘커넥트현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5월 수원점 이름을 ‘타임빌라스 수원’으로 바꾸고 인근 복합쇼핑몰과 경쟁을 하고 있다.
美 메이시스 “내달까지 65개 점포의 문 닫을 것”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업태의 경계를 허무는 쇼핑몰로 전환하는 등 살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양극화 극심한 백화점
지난해 5대 백화점 68개 점포의 전체 거래액은 39조8002억원으로 전년(39조4281억원) 대비 0.9% 느는 데 그쳤다. 성장세가 꺾였다고 백화점 업태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메가 점포만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중소형 점포는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작년 거래액 1조원을 돌파한 12개 점포는 5대 백화점 68개 점포 전체 거래액의 53%를 차지했다. 2023년 12개 점포가 전체에서 차지한 비율은 51%였는데 2%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백화점 매출 1위 점포인 신세계 강남점의 경우 작년 11월 28일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매출 3조원 돌파 시점이 전년(12월 20일)에 비해 약 3주 빨라졌다. 2023년 2조7000억원대 거래액을 올린 롯데 잠실점은 작년에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넘어섰다.
매출 하위권 점포는 매출 부진이 가속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68개 점포 가운데 매출 기준 31위~68위 점포 중 작년에 2023년보다 매출이 증가한 점포는 7개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이 나오지 않는 점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정리하는 데 백화점 기업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석남준 기자 namj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