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의 첫 번째 관세전쟁 전선에 유일하게 남겨진 중국의 입장이 난감하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합의의 물꼬를 텄지만 중국과 미국 간 대화 흐름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압박하는 명분이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중국이 옛 중국 망국의 원인으로 꼽는 마약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멕시코 대통령, 캐나다 총리와 합의,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한 후 "중국과도 관세 문제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겠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과 아마도 24시간 이내로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발표한 관세 부과 시한은 미국 시간 4일로, 한국시간 오후 2시 경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24시간 내 대화로 새로 시한을 제시했고, 해당 시점이 미국시간 심야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관세 부과 시한은 몇 시간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 여론은 여전히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한 비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캐나다, 멕시코의 대화 개시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의 주변국 관세 부과는 뻔뻔한 조치이며 국내외에서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격렬하게 이는 한편 세계 시장이 충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 및 중국공산당의 입 역할을 하는 관영언론들 역시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사이 한 달 관세 유예 합의 소식만을 전할 뿐 중국 정부의 입장이나 미중 간 합의 전망에 대해서는 일체 보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를 보는 중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경제적 타격을 감안하면 빠르게 합의에 도달해야 하겠지만 문제는 명분이다. 트럼프가 중국을 압박하는 명분이 바로 펜타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펜타닐의 원료 상당부분을 공급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집권 1기(2017년 1월~2021년 1월)부터 이 점을 직접적으로 문제삼고 있다.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제조된 펜타닐 유사물질이 미국 내로 불법 유입되고 있다는 거다. 중국 정부는 2019년 5월 유사물질에 대해 전면 규제하겠다고 밝혔지만, 트럼프는 이후에도 중국이 불법유통을 막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중국은 당연히 강하게 반발한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 3일에도 공안부 대변인을 통해 "중국은 세계에서 마약퇴치 정책이 가장 엄격하고 실행이 철저한 국가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상무부와 외교부 역시 "미국 펜타닐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 자체에 있으며, 다른 나라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마약은 망국의 한이 서린 단어다. 청나라가 망하고 서구 열강에 강제로 개방된 빌미가 된 것이 바로 서구의 마약 보급에서 비롯된 아편전쟁이다. 철갑선으로 무장하고 대포를 쏘는 서구에 대응해 미신과 주술적 의미로 배설물을 성벽에 바르던 모습은 중국으로서는 잊어야만 하는 강렬한 트라우마다. 마약 사범을 최고 수위로 처벌하고, 마약 범죄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대응한다.
중국 정부가 멕시코처럼 마약단속 인력 1만명을 국경에 배치하는 식으로 성의를 보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멕시코의 결정은 사실상 마약과 마약 관련 인력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반면 중국으로선 펜타닐 관련 전향적 대안을 내놓음으로써 펜타닐 원료 공급국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미국 측이 중국에 파나마 운하 관련 영향력 축소를 요구하는 것 역시 중국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산업구조인 데다 일대일로를 통해 남미에 영향력을 확대해 온 중국이다. 미국의 압박에 밀려 남미에서 입지가 약해진다면 중국의 대외 기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관련 합의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4일 새벽 미국 증시에서 나스닥 중국골든드래곤지수는 0.53% 하락했고, 핀둬둬 등 주요 중국 주식은 5% 이상 빠졌다. 반면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COMEX 금선물은 온스당 0.55% 상승, 2850.5달러에 거래됐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