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의 ‘관세 전쟁’이 점차 강도를 더하고 있다. 먼저 강공을 편뒤 유리한 협상안을 모색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 탓에 관세 전쟁이 어느 수준까지 확대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상대국과 미국 경제 모두에 해로울 것이란 전망엔 별 이견이 없다. 트럼프 정책이 불러 일으키는 경기침체(recession)라는 뜻의 ‘트럼프세션’이란 말이 다시 나돈다. 주식시장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 옵션 향후 30일 변동성지수(VIX)는 4일(현지시각) 올 들어 최고치로 올랐다.
트럼프 정부는 4일 멕시코·캐나다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산 제품에는 지난달 부과한 추가 10%에 10%를 더했다. 각국이 보복 조처를 발표하거나 예고한 가운데,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멕시코, 캐나다와 협상을 하고 있다”며 “관세 완화 방안을 이르면 5일(현지시각)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법을 폐지하겠다”고 밝히고, “한국의 평균 관세율은 (미국보다) 네 배 더 높다”며 한국에 대한 공세도 예고했다. 앞서 4일엔 “일본과 중국의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 절하 정책이 미국에 불이익을 줄 것”이라며 일본에도 공세를 예고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미국 소비자들의 심리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골드만삭스 그룹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솔로몬이 4일(현지시각)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관세율이 1940년대 이후 최고”라며 “최근 관세 충격으로 인해 미국 GDP가 1.3% 감소하고 핵심 인플레이션이 0.8% 상승할 수 있다”는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분석가 마에바 쿠진과 사제디의 말도 전했다.
미국 뉴욕증시의 주요지수는 최근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월19일 이후 4일까지 9거래일간 8.8% 하락했다. 조정 국면 진입으로 해석되는 ‘10% 하락’에 가까이 다가섰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는 6.0%, 다우지수는 4.7% 하락했다. 관세전쟁의 확산은 금리 인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기대 속에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던 유럽증시도 흔들었다. 4일 독일 닥스(DAX)지수가 3.54% 떨어지고, 프랑스 쎄아세(CAC)40 지수가 1.85%, 영국의 FTSE100지수가 1.27% 하락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산정하는 변동성(VIX)지수는 이날 23.51로 지난해 12월19일(24.09) 이후 최고치로 마감했다. ‘공포지수’라도고 불리는 이 지수의 상승은 시장에 불안심리가 쌓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무역전쟁 국면에 비하면 수치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변동성지수는 미중 무역분쟁 속에 2018년 12월24일 36.07까지 치솟은 바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