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두 번 언급했다. 대미 관세로 미국의 뒤통수를 때린 친구라며 한 번,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의 잠재적 파트너로서 한 번이다. 또 한국에 영향 미칠 정책적 변화도 3가지 언급했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휘두른 만큼 한국 정부와 재계의 기민한 통상 대응이 시급해 보인다. 이날 트럼프의 발언을 두고 올해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0.8%p(포인트) 훼손될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부터 시행되는 상호 관세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며 수많은 다른 나라가 미국이 부과하는 것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해 불공평하다며 한국도 직접 거론했다. 그는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더 높다"며 "우리는 군사적으로 그리고 다른 많은 방법으로 한국에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중국의 관세에 대해선 2배 수준이라고 했는데 한국은 4배라고 했다.
이런 트럼프의 주장에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무역 상대국을 향해 "4월 2일 상호 관세가 발효되고, 그들이 우리에게 관세를 매기면 우리도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의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참여에는 환영 의사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알래스카주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일본,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고 그 나라들이 수조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했다. 상호관세에 있어선 한국도 요주의 국가지만, 산업협력을 통해 통상압력을 약화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한국에 앞서 일본은 지난달 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합작투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 아직 정상회담 전이지만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말 미국 통상 당국자들과 면담하고 관세와 조선, 에너지, 알래스카 가스 개발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의체 개설에 합의한 상황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밤 백악관에 새로운 조선 부서를 만들고 특별 세금혜택을 제공하겠다"며 해운업 육성 방침도 천명했다. 한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과거 한국과의 조선업(전함) 협력을 먼저 언급했던 만큼 양국 협력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한해 대출이자 세금공제 혜택을 줘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을 촉진하겠단 계획도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면서 4월 초 나올 수입 자동차 관세는 세율이 25%에 가까울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자동차 업계도 관세를 피하기 위한 생산망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반도체법)' 폐기 방침도 공식화했다. TSMC가 관세 압박 속에 미국 애리조나에 5개의 제조 시설을 건설하는 데 1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지 하루 만에 나온 발언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의 보조금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편 5일 블룸버그통신 산하 경제 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미국의 관세 위협만으로도 올해 한국의 GDP가 0.8% 감소할 수 있으며, 그 영향은 하반기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은행의 올해 한국 GDP 성장률 전망치는 1.5%다. 블룸버그는 또 트럼프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가능성을 잠재적인 문제로 꼽았다.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