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에 대응해 미 빅테크의 서비스 산업에 보복하는 ACI, 이른바 '바주카'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팸 본디 법무장관 취임식 도중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유럽연합(EU)이 미국 빅테크에 대대적인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럽 제품 관세율을 높이면 EU는 미 빅테크를 대상으로 대규모 보복에 나선다는 것이다.
미국이 유럽 재화에 관세를 물리면 유럽은 미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서비스 부문을 무역전쟁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현지시간) 소식통 2명을 인용해 EU가 트럼프 관세에 맞서 미 빅테크의 서비스 부문에 보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EU 관계자 2명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미국과 무역 분쟁이 빚어질 경우 이에 맞설 ‘강압에 대항하는 수단(ACI, anti-coercion instrument)’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빅테크 같은 미 서비스 업체들에 대한 보복이다.
한 관계자는 “모든 옵션이 현재 논의 중”이라면서 ACI는 이 가운데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활용가능한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이라고 말했다.
ACI는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과 무역전쟁을 대비해 만들어졌다. 다만 첫 활용대상은 미국이 아닌 중국이었다.
미국과는 협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없던 일이 됐기 때문이다.
EU는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ACI를 동원했다.
EU는 특정국이 관세를 활용해 정책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ACI 를 발동해 서비스 부문 교역을 제한할 수 있다.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내놓으라며 관세로 협박하고, EU에는 미 기술업체들에 대한 대응을 중단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에게 맞서 ACI를 동원할 수 있다고 EU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ACI는 ‘바주카’라는 별명도 있다. 2023년 ACI를 발동하자 일부 EU 관계자들이 이렇게 불렀다.
ACI가 발동되면 지적재산권 보호가 무효가 되고, 소프트웨어 내려받기, 스트리밍 서비스 등도 제한을 받는다.
빅테크의 서비스 부문만 그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EU는 ACI를 통해 은행, 보험, 기타 금융서비스 업체들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나 시장 접근을 막을 수도 있다.
한 EU 관계자는 EU가 재화에 물리는 관세를 보복 수단으로 자주 활용하고는 있지만 아직 생소한 서비스와 지재권 부문 갈등으로 그 영역을 넓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관세가 단지 협상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EU에 ‘반드시’ 관세를 물리겠다고 다짐했다.
멕시코, 캐나다와는 협상을 위해 한 달 유예하기로 했지만 중국에는 추가 관세를 물렸다.
트럼프가 다른 나라와 관세 문제에서 캐나다, 멕시코처럼 협상으로 대응할지, 아니면 중국에 그런 것처럼 일단 관세 시행부터 나설지 종잡을 수 없게 됐다.
한편 트럼프 관세 압박 속에 EU 통상장관들은 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비공개 회의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다수는 필요할 경우 보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복은 그러나 즉각적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EU 집행위가 EU 산업에 미친 부정적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27개 회원국 가운데 최소 15개국이 보복에 찬성해야 한다.
2018년 3월 트럼프가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물렸을 때 EU가 미국 제품 28억유로 어치에 보복관세를 물리는 데는 석 달이 걸렸다.
송경재 기자 (dympna@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