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해 제조업이 강한 우리나라 산업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밸류업이 장기보유 주주의 이익극대화를 철학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밸류업 관점에서 본 한미일 증시'를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먼저 김 센터장은 미국 주식회사들의 특징에 대해 '주주 자본주의의 과잉'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우량기업들의 자기자본 잠식에 대해 주인이 없는 미국 기업의 특성으로 과도한 주주환원이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김 센터장은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은 삼성전자의 몇배의 이익을 내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주주에게 돌려주며 자기자본이익률(ROE)가 170% 라는 엽기적인 숫자가 나타나고 있다"며 "애플뿐 아니라 스타벅스나 맥도날드같은 기업들은 빚까지 내서 주주환원을 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주주환원은) 최근 6~7년 동안 벌어진 일로, 일반적인 사안은 아니다"라며 "주인이 없으니 경영진이 마음대로 보수도 올리고 인센티브를 주가와 연동시키며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인데,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미국식 주주환원은 제조업이 강한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은 따라하기 힘들거다고도 말했다.
김 센터장은 "전세계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한중일 같이 제조업이 강한 나라들이 미국처럼 할 수 없는 것은 산업구조 때문"이라며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없고 무형의 메뉴얼이 경쟁력인 미국 산업과 달리, 장치산업인 제조업은 지속적인 재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에 자기자본을 높게 가져갈 필요가 있기 때문에 ROE나 PBR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구조에서 일본증시가 지난 1980년대 버블경제 당시 고점을 넘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은 주주환원을 통해 '일본의 국부를 한바퀴 돌리고자 한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 센터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주가 부양을 하려면 국내에서도 적절한 주주환원을 통해 자기자본을 줄여야 한다면서도, '적절한 주주환원 규모'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2017년 이후 삼성전자는 당기순이익의 36%를 배당과 자사주매입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있는데, 주주환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며 "삼성전자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기업이고, ROE가 15%정도로 높은데, 주주환원보다 오히려 재투자를 하는게 장기 주주들에게는 주주가치 극대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김 센터장은 밸류업이 장기보유 주주의 이익극대화라는 철학에 따라 추진돼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팬데믹 이후 국내 주식투자 인구가 1400만 명에 달하며 주식이라는 자산의 이해관계에 노출된 사람이 많아졌는데, 다소의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과거보다 전향적으로 주주 입장에서 세상이 바뀌는 길로 가는 상황"이라며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이 주주환원을 못할 수도 있지만, 못하면 못하는대로 설명을 해야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최근 나타나는 이종기업 간의 합병은 오너 입장에서는 좋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며 "상법 개정 등을 다양한 논의가 있는데, 소수 지배주주와 다수 소액주주의 발언권을 대등하게 가질 수 있도록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정현 기자 (Kri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