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HBM3E D램 이미지 /사진 제공=삼성전자
미국발 경기침체 가능성과 인공지능(AI)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면서 전 세계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의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인 '블랙웰'의 제품전략을 변경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AI 투자가 정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악재로 작용했다. 엔비디아에 대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눈앞에 둔 삼성전자의 주가도 출렁였다.
시장은 이러한 상황을 과도한 우려로 해석한다.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여전히 엔비디아 GPU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고, 내년부터는 범용 D램의 반등세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주가 변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반기로 약속한 HBM 성과를 구체화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피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6일 전일 대비 1.54% 오른 7만2500원에 마감했다. 지난 1일부터 3거래일 연속 하락하다 소폭 상승했다. 5일 주가는 7만1200원으로 전날보다 10.55%나 급락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한 달간 18% 떨어지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기간 33.9% 하락해 국내 반도체 업계 전반이 약세를 보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하락한 결정적 요인은 미국 경기 둔화 우려와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AI 시장의 수요부진 가능성이다. 메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대형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AI 서버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지만, 챗GPT를 제외하면 보편화된 AI 서비스가 부족해 'AI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는 시장 선점을 위해 엔비디아 GPU 구매가 활발하지만, 언제든 수요가 꺾이고 재고가 충분해지면 시장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블랙웰 GPU의 제품군 전략 변경 가능성도 반도체 기업 주가에 악재가 됐다. 올해 말 출시 예정이었던 'B100'이 취소되고, 내년 초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 'GB200'도 한 분기가량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블랙웰은 현재 엔비디아의 주력 '호퍼'에 이은 차세대 GPU 제품군이다. 단일 칩 형태인 B100과 B100 2개, '그레이스' 중앙처리장치(CPU)를 연결한 고성능 제품 GB200 등으로 구성된다.
B100 양산이 취소된 것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GB200에 집중하려는 엔비디아의 의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GB200 출시까지 지연될 수 있다는 보도로 차세대 GPU 자체에 설계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됐다. 엔비디아는 이를 부인하며 블랙웰 생산 준비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일주일간 삼성전자 주가 추이. /자료 제공=네이버페이증권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GPU와 함께 조립되는 HBM3E(5세대) 8단 제품 공급을 앞두고 있다. 만약 엔비디아의 GPU 출시가 미뤄지고 수요가 감소하면 삼성전자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증권사와 반도체 업계는 이러한 전망이 기우라고 본다. 이미 서버 투자가 막대한 규모로 진행되는 가운데 데이터센터들이 블랙웰 출시를 기다리면서 엔비디아의 다른 GPU를 조달할 여지가 있어서다. 실제로 올해 MS, 구글, 아마존, 메타의 데이터센터 설비투자는 총 1700억달러(약 234조원)에 이른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세계 서버 시장 규모는 2023년 41억달러(약 5조6000억원), 2024년 119억달러(약 16조4000억원), 2025년 184억달러(약 25조3000억원)로 전망된다. 아울러 전체 서버 중 AI용 서버의 비중은 2023년 35%, 2024년 59%, 2025년 69%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메모리 기업으로서는 엔비디아의 제품군 전환에 따른 타격이 제한적이다. 엔비디아가 B200 생산을 취소하더라도 기존 호퍼 기반의 H200을 비롯한 다른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H200은 B200과 마찬가지로 HBM3E 8단을 사용한다. 용량은 H200이 144GB(기가바이트), B200이 192GB로 차이를 보이지만 칩 크기 차이로 H200의 생산 효율성이 더 높다. 노무라증권은 H200의 HBM 탑재량이 B200보다 약 30%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AI를 둘러싸고 잡음이 나오는 가운데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하반기에 더 명확한 HBM 공급 실적을 쌓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HBM 매출이 전 분기보다 3배 가까이 성장하는 등 성과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아직 엔비디아에 대한 HBM3E 납품을 시작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 중 HBM3E 8단 양산을 개시하고 하반기 중 12단까지 납품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HBM 매출에서 HBM3E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 3분기 10% 중반까지 확대되고, 4분기에는 60%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생산량도 공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는 전년 대비 4배, 내년에는 올해보다 2배 이상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출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공급량을 빠르게 확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문량이 뒷받침된다는 의미"라며 "하반기에 확실한 공급 성과가 매출에 반영된다면 하방 압력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