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로벌 증시 폭락 과정에서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3국의 하락 폭은 미국·유럽 등 서방국가보다 더 컸다. 지난 5일 한국 코스피, 일본 닛케이지수, 대만 가권지수의 하락율은 8~12%대였다. 그런데 같은 날 미국의 S&P500지수는 3% 떨어졌고, 유럽 주요 국들의 주가지수도 1~2%대 하락에 그쳤다. 왜 유독 이 3국의 하락세가 컸을까.
일본의 경우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따른 역효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일본 금리 인상으로 한때 1달러당 160엔을 넘었던 엔화 환율이 140엔대로 하락(엔화 가치 상승)하면서 일본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과 대만은 일본과 달리 기준금리를 동결해왔는데도 폭락을 피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산업 구조가 모두 ‘반도체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해 ‘거품론’이 불거지자, AI 산업에 반도체를 공급해 온 한국과 대만의 증시가 타격을 입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달러 등 다른 나라의 통화로 바꾼 뒤, 그 나라에서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투자 방식) 청산 우려도 한국·대만 증시에 악영향을 미쳤다. 서 연구원은 “일본에서 빌린 돈의 상당 부분이 한국과 대만에 투자됐을 것”이라며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이 시작되면서 한국과 대만의 증시 낙폭이 커졌다”고 했다.
투자자들이 동아시아 국가를 한 세트로 묶어 투자하는, 이른바 ‘그룹 효과’도 원인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관 투자자들은 지역 단위로 묶어 투자하는데, 한국·일본·대만은 대표적인 ‘동아시아 주식’으로 분류된다”며 “일본 주가 급락으로 글로번 ‘큰손’들이 주식을 급히 처분할 때 한국과 대만 주식도 같이 판 것”이라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미·중 갈등의 심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한국·일본·대만의 ‘미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된 것을 근본적 배경으로 꼽는 전문가도 많다. 세 국가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나 자동차, 배터리 업계가 미국의 경기 전망에 따라 더 큰 폭의 부침을 겪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