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매파(긴축 정책 선호)’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일본 신임 총리로 선출될 자민당 총재로 결정되면서 외환과 주식 시장이 큰 폭으로 출렁였다.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조기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다. 세계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엔 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 청산 가능성도 다시 커지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30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닛케이225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8% 급락한 3만7919에 거래를 마쳤다. 닛케이지수는 최근 연일 급등하며 4만선 진입을 눈앞에 뒀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에도 BOJ가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다. 하지만 이날 주가 급락으로 최근 주가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해 3만8000선 밑으로 다시 하락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엔화 값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7일 장 중 한때 146엔까지 떨어졌다(환율 상승). 하지만 이후 상승 반전해 오후 3시 30분 기준 141.77엔(전 거래일 대비 1.33엔 상승)까지 다시 올랐다.
일본 증시·외환시장 분위기가 바뀐 것은 이시바 총재가 예상 밖으로 당선되면서다. 원래 시장에서는 BOJ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보담당상의 승리를 점쳤다. 이 영향에 주가는 오르고 엔화 가치는 하락 추세를 탔었다. 하지만 고물가 해결을 위해 점진적 금리 인상에 찬성하는 매파 이시바 총재가 다카이치를 누르자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이시바 총재는 평균 시급 인상, 부유층 금융 소득에 대한 과세 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주가 상승에 부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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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닛케이지수 하락 폭은 1990년 이후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 후 첫 거래일 중 가장 컸다. 통상 새 총리가 결정되면 기대감에 주가가 오르는 이른바 ‘축의금 시세’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신문은 “이시바가 승리하면서 다카이치 승리로 기대했던 ‘엔화 평가절하’ 전망이 역전돼 새 행정부 정책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시바 쇼크’는 국내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공포가 다시 커진 것이다. 대규모 부양책을 발표한 중국 증시로 투자 자금이 쏠리는 점도 국내 주가 하락 폭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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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13%(56.51포인트) 하락한 2593.27에 거래를 마치면서 2600선이 깨졌다. 삼성전자(-4.21%)와 SK하이닉스(-5.01%)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도 큰 폭 하락 마감했다. 코스닥 지수도 전 거래일 대비 1.37%(10.61포인트) 내린 763.88에 장을 마쳤다. 달러당 원화 값은 1310원대 아래로 내려가며 상승세를 탔다.
이시바 총재의 매파적 성향에도 BOJ가 쉽사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할 거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가 가진 높은 국가 부채 규모를 고려할 때 BOJ가 급격히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이시바 “중의원 조기해산, 27일 총선”=이시바 총재는 이날 “조건이 갖춰지면 10월 27일에 해산 총선거를 실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일 총리에 선출될 예정인데, 그 전에 중의원(하원) 해산을 전제로 한 총선거를 선언한 것이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