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0조 위안(약 1935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경제 회복의 걸림돌로 꼽힌 지방 정부 부채 문제를 해결해 내수를 반등시키겠다는 게 목표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해소를 위해 ‘60% 추가 관세 부과’를 공약한 트럼프 당선에 따라 부양책 규모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란포안(藍佛安) 중국 재정부장(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지방정부 부채 한도 6조 위안(약 1161조원) 증액에 승인했다고 밝혔다. 또 총 4조 위안(약 774조원)의 지방정부 특별 채권을 지방정부 부채 해결에 투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올해 말 29조5200억 위안인 지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3년간 단계적으로 증액해 35조5200억 위안까지 늘리기로 했다. 증액이 이뤄진 6조 위안은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를 대체하는 자원으로 쓸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이 연중에 지방 정부의 부채 한도를 인상한 건 2015년 이후 처음이다.
5년간 연간 8000억 위안의 지방정부 특별채권을 통해 마련한 총 4억원도 숨겨진 부채 상환에 쓴다. 란 부장은 “2028년 전까지 지방정부가 상환해야하는 숨겨진 부채 총액은 14조3000억 위안(2767조원)에서 2조3000억 위안(445조원)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지방정부 부채 폭탄 해소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나고, 금융 자산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지방정부는 공공지출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지만, 부동산 침체가 길어지면서 막대한 부채를 쌓아왔다. 공식 부채로는 잡히지 않는 숨겨진 부채로 인해 이자비용까지 감당하면서 지방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가로막는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국이 이번 재정 부양책을 통해 지방정부 부채 상환에 집중한 건 이 때문이다.
실제 지난 2분기와 3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4.7%, 4.6%를 기록하면서 올해 성장률 목표치(5%) 달성엔 경고등이 들어왔다. 여기에 향후 트럼프 대통령 체제에서 미국이 중국 상품에 관세를 대폭 부과할 경우 수출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졌다.
경제 성장률, 목표치 못 미치며 부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중국 국가통계국]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4조 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재정으로 ‘바주카포’를 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경기 부양책은 그 1.5배 규모다. 다만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증가한 만큼 GDP 대비 비중으론 2008년보다 작다.
특히 이번엔 재정이 부채를 해소하는 데 쓰이다 보니 인프라 투자나 현금성 복지 지출처럼 즉각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중국이 재고 주택 판매 가속화나 복지 지출 등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는 시장 전망도 나왔던 만큼 시장에선 실망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방 정부의 부채 구조가 개선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당장 실물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진 미지수”라고 말했다
경기 활성화 효과가 나타나느냐에 따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도 차이가 있을 예정이다. 중국의 소비가 다시 활성화할 경우 대중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 입장에선 큰 호재로 작용한다. 백관열LS증권 연구원은 “부양책 규모가 크고 시장 예상과 부합하는 만큼 어느 정도 효과는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데 이 경우 한국의 중간재와 소비재 수출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이번 발표가 소비 심리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에 의문은 있다”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한편, 중국은 다음달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열어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포함한 경제 운용 기조를 확정한다. 이어 내년에는 중국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4차전체회의(4중전회)와 5중전회를 소집해 오는 2026~2030년 시행할 제15차 5개년 계획의 기조를 확정하면서 트럼프 2기 본격화 될 미중 패권 경쟁에 대비할 전망이다.
정진호 기자,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