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321곳 분석
압구정 성수 여의도 잠실 등
높이 200m 이상 아파트 추진
한강변 35층 규제 폐지 한몫
초고층 단지 6곳→19곳 늘어
홍콩·뉴욕 같은 빌딩 숲 기대
공사비 뛰어 분담금 급증 우려
일부 조합들 층수 낮춰 추진도
2040년, 서울 한강변 스카이라인이 ‘천지개벽’한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50층 이상 ‘마천루’ 사업 계획이 속속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m이상 초고층 건물 수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면 런던 파리같은 해외 메가시티의 현재 스카이라인 수준을 뛰어넘게 된다.
12일 매일경제가 부동산 전문 리서치회사 리얼투데이에 의뢰해 서울 시내 재개발·재건축 조합 321곳의 사업추진현황을 조사한 결과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를 추진 중인 정비사업장은 13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층 건물은 일반적으로 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m 이상인 건물을 의미한다. 정비사업 초기에서 완료까지 통상 10~15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 한강변은 향후 최고 70층 안팎의 초고층 빌딩 숲으로 거듭나게 된다.
현재 새로 추진되는 초고층 아파트는 성수, 여의도, 압구정 등 땅값이 비싼 한강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압구정 2~5구역은 모두 69~70층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성수4지구는 77층 초고층 설계를 확정한 뒤 시공사 선정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여의도에서는 시범(65층), 목화(60층), 진주(58층), 한양(56층) 등이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한다. 잠실에서는 잠실주공5단지가 70층 재건축에 나선다. 장미1·2·3차도 최고 69층 건축을 검토 중이다.
현재 서울 최고층 아파트는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3차’와 양천구 목동 ‘현대하이페리온1차’로 각 69층이다. 현재 서울에서 200m가 넘는 초고층 주거 전용 단지는 6개에 불과하다.
자치구별로 50층 이상 정비사업을 추진 현황을 살펴보면 여의도가 위치한 영등포구가 4곳으로 가장 많고, 성동구(3곳), 강남구(3곳), 송파구(2곳), 용산구(1곳) 순이다. 이밖에 서울에서는 40~49층 사이의 고층 아파트를 추진 중인 사업장도 29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초고층 아파트는 지을 때부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완공 뒤 관리비도 상당하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만 추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50층 이상 고층 아파트를 추진하는 정비 사업장이 늘어난 건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변 아파트 최고 높이 35층 제한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앞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13년 서울시는 일조권과 조망권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주거용 건축물 높이를 35층 이하로 제한했다. 하지만 획일적 규제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정비사업 속도를 늦춘다는 판단에 오세훈 시장이 들어서며 이 규제를 폐지했다.
각 조합은 랜드마크 단지 선점 효과와 사업성 개선 등을 노리고 층수 높이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한강 주변 단지의 경우 초고층 아파트로 지을수록 더 많은 가구가 한강 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여기에 주변 건물과 비교해 높게 치솟은 건축물이 주는 웅장함 덕분에 ‘대장 아파트’로 자리매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초고층 아파트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50층 이상 건축물을 지을 때는 그 이하 건축물을 지을 때보다 평균 36% 가량 건축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며 “초고층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콘크리트와 철근의 강도와 두께가 늘어나고, 지하층을 만드는 공법도 바뀐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들 분담금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0층 이상 건축물에 추가 적용되는 대피장소 설치와 여러 심의과정도 있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 단계엔 50층 이상 초고층으로 추진하고 나섰다가 계획을 변경해 층수를 낮추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목동14단지는 지난 4월 최고 층수를 35층에서 60층으로 높이는 정비계획을 발표했다가 지난달 최고 층수를 49층으로 낮추는 신속통합기획 조치계획을 제출했다.
초고층을 선택한 조합은 단지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초고층을 선택하지 않았다가 자칫 재건축·재개발이 완료된 후 저층 단지라는 평가를 받으면 가격 경쟁력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평당 2억에 육박하는 단지의 경우 공사비가 30% 올라가더라도 감당이 가능하고 오히려 높이 올릴수록 아파트 가격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오히려 ‘마천루의 저주’에 빠질 수 있어 냉정한 사업 판단과 의견을 조율하는 조합의 역량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박사)는 “국토의 균형 발전이 중요하지만 서울의 발전 가능성을 억제하면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강남 지역이 고층·고용적률로 탈바꿈하는 것은 여기저기서 실현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이며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행정·토건·법률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기에 재건축 재개발을 무조건 누르는 것이 아닌 질서 있는 이행이 가능하도록 협조하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추진중인 초고층 정비사업이 완성될 경우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인 런던과 파리보다 서울에 더 많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될 전망이다. 세계초고층학회(CTBUH)에 따르면 런던과 파리의 경우 200m 이상 초고층 건물을 각각 13개, 4개 보유하고 있다. 런던과 파리의 초고층 건물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숫자의 마천루 아파트 빌딩숲이 서울에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구자민 리얼투데이 연구원은 “현재 서울 정비사업장은 최고층 경쟁이 붙은 상태로 세계적인 마천루를 보유한 뉴욕 홍콩처럼 한강변을 중심으로 랜드마크급 아파트가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유신 기자(trust@mk.co.kr), 황순민 기자(smhwang@mk.co.kr)